Part1.

제주 출신이라는 것이 작업에 어떤 식으로 나타나나요..? 혹은 타자가 보았을 때, 본인은 몰랐던 제주적인 특성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었다면 궁금합니다.

(작업은 개인적인 특성이 더 두드러진다고 생각하는 주의입니다만, 아무래도 살아온 환경적인 영향도 있을 테니까요.)

제주도가 제 작업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큽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함께 제주 전역을 많이 돌아다녔는데 그 경험이 저를 형성하다시피 했으니까요. (모든 집안이 저희 가족처럼 이리저리 쏘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것은 좀 크고 난 뒤의 일이었죠.) 어쨌거나 저는 다른 또래 친구들에 비해 제주를 훨씬 폭넓게 경험해 왔고, 그만큼 애착도 큰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제주스러운 느낌이 작품에 반영되곤 하죠. 그 제주스럽다는 것이 어떻게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다른 분들도 제 작업을 보면서 제주스럽다는 말을 많이 하고, 제가 제주 출신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조차 그런 이야기를 종종해서 그때마다 참 신기합니다. 제주스러움이 어떻게, 어떤 메커니즘으로 드러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주도가 제 정서 전반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 있고, 그것이 손을 통해 또다시 자연스럽게 구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업을 할 때 본인만의 의식(세레머니) 같은 것이 있나요?

글쎄요, 저만의 의식이 있다기보다는 정돈된 상태에서 작업하는 것을 선호해서 새로운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는 꼭 제 자리를 한번 쭉 청소합니다. 많은 분들이 예술가가 작업을 할 때 넘쳐흐르는 영감을 주체 못 한다거나, 유별난 점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죠. 동양화 같은 경우는 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밑 작업을 꼼꼼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서 어쩌면 그것이 제 작업의 의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종이를 붙이고, 간단하게 도침을 하고, 아교포수를 하면서 마음을 정돈합니다. 작업을 하면서 요란하게 구는 건 딱 질색이거든요.

작업을 함에 있어서 영감의 원천은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십니까?

본인이 삶에서 겪는 모든 것이죠. ‘나’라는 자아와 외부 세계가 맞닥뜨렸을 때의 모든 충돌이 곧 영감의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감이 순간의 감흥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오히려 스스로의 삶이 누적되고 축적되면서 발현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래서 예술가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감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지런해야 한다는 거죠.

왜 ‘예술’을 하시나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고민하는 청년작가들이 참 많습니다. 혹자는 그 이유를 찾지 못해 예술계를 떠나기도 하고요. 중요한 질문이고 저 또한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좀 더 본인이 작업을 함에 있어서 목표의식이라던가 방향성이 구체적으로 잡힐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아직 젊은 작가이기에 지금 그 질문에 당장 답을 내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고민하는 것을 멈추면 안 되겠지요.) 훗날 제가 예술을 하는 이유를 규정하는 때가 오더라도, 지금 당장은 좀 더 저의 가능성을 크게 열어두고 싶네요. 저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예술을 시작했고, 지금도 당연한 듯이 예술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제 삶이 원래 그래야 하는 것처럼요.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동기가 충분합니다.

————————————————————————————————————–

Part2.

작품을 보면 굉장히 생각이 많으신 분 같습니다. 작업을 할 때 어떤 생각을 많이 하시는 편이세요? 그 생각들이 작품에 많이 반영되는 편인지요?

우선 제 작품을 봤을 때 생각이 많은 것이 느껴진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눈에 띄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쨌거나 그 배경에 깔린 개념이나 스토리도 중요한 시대니까요. 생각이 많아 보인다는 것은 제가 작품 안에 뭔가를 담아내려고 고민한 것이 발현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시도하는 것이 이 미술계가 청년작가들에게 요구하는 바이기도 하고요. 작업을 할 때에는 현재 하고 있는 작업의 방향성이라던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생각을 주로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방식이 과연 옳은지, 앞으로의 작업과 어떤 연결선상에 놓일 수 있을지 끊임없이 검증하려 노력하죠. 작업할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자주 하고 작품에도 많이 반영이 됩니다. 물론 손이라는 무의식적인 필터를 거치면서 또 다른 전개로 나아가는 경우도 많지만요. 그 과정에서 또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생각하는 여지가 생기는데 그것이 예술의 가장 큰 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전 작품에서는 색감이 있고 굉장히 포근한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정반대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등장하는 인물들도 없어졌고요. 작품의 경향이 바뀌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으셨나요?

과거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자연을 그려왔습니다. 좀 더 설명드리자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었죠. 이전의 작업에서는 일종의 에덴, 혹은 도원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을 그렸고 그 안에 인간의 형상도 가끔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낭만적인 자연을 그리는 것이 오늘날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을 통한 치유, 감정의 순화 같은 것에 의미를 둘 수도 있겠지만, 글쎄요…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해버리기엔 자연과 관련된 현대의 이슈들은 너무나 치열하지 않나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논쟁은 끊이질 않고, 자연에 개입된 자본은 이를 더욱 격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에 대한 저의 담론을 구체화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죠. 그때 떠오른 것이 동양의 산수화였어요.

오랜 예전부터 자연을 표현한 그림에는 인간의 이상이 반영되어 왔습니다. 산수화에서 자연은 이치에 맞다고 여겨지는 형상으로 표현되었고, 인간의 목적에 맞게 실용적인 관점에서 정돈되어 표현되었죠. 감상자가 산수화를 바라볼 때 이상적인 자연에서 살고자 하는 욕구가 충족되도록 그려져야 한다는 논리도 있었고요. 이런 방식으로 옛 산수화론들은 자연 형상에 인간의 낭만이 개입될 것을 요구해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이자, 자연을 도구적으로 인식하려는 태도가 아닐까 하고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친절하지 않은’ 산수화를 그려보자고 생각했어요. 수많은 필선으로 이루어지는 제 작업은 기존 산수화에서 나타나는 낭만과는 거리가 멉니다. 복잡하고, 그 속에 들어가면 길을 잃을 것만 같고, 사람이 편안하게 있을 만한 구석은 찾아볼 수 없죠. 당연히 집이나 교량 같은, 인간을 위한 장치 또한 마련되어있지 않고요. 이런 식으로 방향을 잡게 되면서 제 작업이 전환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작품을 보면 보글보글, 부글부글 같은 단어가 연상되는데요. 끝도 없이 펼쳐지는 공간에서 봉우리가 생성되었다가 소멸하고…, 계속 반복될 것 같은 이미지로 다가왔습니다. 어떤 곳에는 특별하게도 블랙홀 같은 것이 보이기도 하고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요상한 공간. 어떤 의도를 위해   표현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제 작업은 기존 산수화의 법식에서 벗어나 인간의 입장에서 불친절한 산수를 구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은 인간 없이 그 자체만으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태초의 생명력을 가지는 거대한 존재이죠. 저는 무수하게 중첩되면서 끊어지거나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선들로 그러한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했고, 그 결과 스스로 생성되고 소멸되는 느낌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블랙홀 같은 형상은 동굴을 표현한 것입니다. 옛날에 한 어부가 산속에서 길을 헤매다가 동굴을 발견했고, 거기로 들어갔더니 아름다운 도원이 펼쳐지더라는 설화는 너무나 유명해서 많이들 아실 거예요. 도원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내용이죠. 오랜 예전부터 인간들은 어딘가에 있을 낙원을 꿈꿔 왔습니다. <도화원기> 또한 그러한 열망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고요. 하지만 그러한 열망은 사실상 자연에 대한 부자연스러운 요구일 뿐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시커먼 동굴과 미로 같은 산의 형상, 어두운 분위기를 통해 도원은 없다는 것을, 우리 인간들이 자연에게 원하는 것은 결국 허상일 뿐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면 좋을 것 같나요?

작품이 전시되는 순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쨌거나 관람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관람자들이 작품을 어떠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본 적은 없어요. (물론 제 작업에 대해 ‘좋다’고 생각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이것은 저뿐 아니라 모든 작가들이 원하는 바이니까요!) 오히려 관람자들이 어떻게 작품을 감상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다만 다양한 이미지와 작업 방식을 시도해 온 제 작업에 대해서 그 전체를 관통하는 저만의 서사와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해 주는 때가 가장 기쁜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앞으로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집요하게 파고들 예정입니다. 그에 따라 자연에 개입된 자본이라던가 꾸며진 자연의 이면에 숨겨진 것들에 대해서 작업을 하게 될 것 같아요. 당연히 관광산업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고향 제주도에 대해서도 작업하게 되겠죠. 하지만 비단 제주도라는 한정된 지역성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여 폭넓게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동양화 재료에 얽매이지 않고 더욱 다양한 회화 매체를 사용하려는 생각도 있고요. 지금까지 그래왔듯 회화 외에 설치나 영상 작업도 병행하며 오랫동안 즐겁게 작업해나가고 싶습니다.

필자 : 현승의 herworks@naver.com

안녕하세요, 밥 먹고 잠 자고 작업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청년작가입니다.

2016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학사 졸업
2018 서울대학교 대학원 동양화전공 석사 수료

2016 단체전 <Cutting Edge 100>, 가나아트센터, 서울
2017 단체전 <시각의 좌표>, 토포하우스, 서울
2018 단체전 <그사이 : 뜰>, 아이디어팩토리, 서울
2018 2인전 <어둠 속에서 몇 개의 그림자가 서성이었다>, 아츠스테이갤러리,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