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제목학원

2018 홍콩 아트바젤과 아트센트럴 페어를 다녀오면서 나는 지금까지 운동선수로만 해외를 다녀온 사람으로 아트페어라는 곳을 처음 가보고, 또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처음이다. 항상 전지훈련 혹은 대표팀 대회 일정으로 해외를 다녔는데, 홍콩 역시 시합을 위하여만 다녀왔다. 작품을 보고 작가도, 제목도 모르는 상태에서 작품들을 직접 보고 제목을 지어봤다. 나는 홍콩의 아트바젤 규모가 아주 작은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이 오고 장소도 넓고 멋지다. 우리나라...

새벽을 시작하는 느린 걸음

탁발, 당신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새벽 4시 잠에서 깼다. 아니, 절로 눈이 떠졌다는 표현이 맞다. 치앙마이에서 두 번의 밤을 보냈지만, 여전히 몸은 한국 시차에서 머물러 있어서인지 이른 새벽에 절로 눈이 떠졌다. 잠은 다시 오지 않았고,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이 가득 찼다. 이번 여행은 정말 아무 계획도 잡지 않은 것이 컨셉이라면 컨셉이었지만, 한국서부터 노래를 부른 게 딱 3가지가 있었다. 무에타이와 태국 요리 배우기 그리고 탁발을 경험하는 것. 라오스의...

바다가 좋아

바다를 좋아한다. 부모님은 바다를 좋아하는 딸내미를 위해 꽉 막히는 고속도로를 뚫고 동해로 서해로 온갖 해수욕장을 다 찾아다녔다. 나는 바다에 튜브를 타고 떠서 파도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 있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좋았다. 내 몸의 중력이 0이 되는 기분, 흐름에 몸을 맡기고 정처 없이 떠다니는 그 시간을 참 좋아했다. 멍하니 파도를 바라보는 것도 좋아했다. 보드라우면서 거칠기도 한 모래의 감촉을 느끼면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이런 내게 최고의 여행지는 바다가...

교포생활자식탁 3 : 골동면

  대장금이 한창 인기를 끌었던 시절, - 아,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나이가 드러난다. - 아직 학생이었던 나는 장금이 이영애와 수라간 최고 상궁 한 상궁 마마님이 뚝딱뚝딱 만들어 내던, 당최 내 살아생전엔 맛볼 길 없을 것 같은 요리들에 입맛을 다시며 ‘그래, 내가 저걸 먹어보려면 배워서 해 먹는 수밖에 없지.’ 하고 밑도 끝도 없는 궁중요리 마스터를 다짐했었다. 물론 궁중요리는커녕 한국 요리 코스도 없는 이 지구 반대편에 와 살고 있을 거란 사실은 눈곱만큼도 생각 못 하던...

내가 다시 제주로 돌아온 이유

내가 다시 제주로 돌아온 이유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감상적인 분위기를 탈 수밖에 없다. 이제 반백이 되어 쓰는 이 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과거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의 이나연 편집장을 나의 고향 제주에서 알게 돼서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과거가 부르는 어떤 목소리가 있지 않나 싶다. ‘쓰고 싶은 글을 쓰면 된다’는 그의 설명에 ‘이런 자유는 처음인데?’라는 감동과 함께 어떤 묵직한 밀림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를 민 그 힘이...

WHERE WE LIVE, 아파트를 둘러싼 사람들

정재은 감독의 영화 는 을 읽으며 세운상가를 서성이는 여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1995)은 지금은 카리스마 넘치는 영화감독인 유하가 말랑말랑한 감수성의 시 쓰는 청년이었을 때 쓴 시집으로, 유하는 ‘시인의 산문’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겼다. “시간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만 달려가는데, 난 자꾸 멈칫멈칫 뒤돌아본다.” 앞서 달리지도, 약삭빠르지도 못한 두 창작자가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는 공통적이지만, 의 등장은 시기적으로 꽤 절묘하다. 최근 한국 주택시장의 뜨거운 이슈는...

입장전환, 혹은 (The Tables Turned), ‘선생님, 지구는 살아있나요?’

선생님, 지구는 살아있나요?   “자연은 주는 가르침은 달콤하지만, / 우리의 지성은 이를 간섭해서 / 아름다운 자연을 왜곡시키고, / 해부하여 죽이고 있다네“ -윌리엄 워즈워드 (William Wordsworth)의 시 ‘입장전환(The Tables Turned)’에서 발췌   5월 18일, 나는 한 한국 초등학교의 영어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날의 학습목표는 “생물”과 “무생물”의 개념의 이해였는데, 교과서에선 생물과 무생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었다....

팀 셔록 인터뷰, by 세스 마틴

1부: 한국을 보는 서구 언론의 시각과 미국의 통속적인 견해 세스 마틴: 당신은 2차 세계대전의 여파 속에서 한국과 일본에서 선교사의 자녀로 자랐고, 또 전후의 황폐화와 재건 기간 동안에 혼돈과 빈곤이 만연했던 시기에 그 두 나라를 보았다. 당신의 뿌리와, 무엇이 당신을 탐사 보도 기자로 만들었는지 얘기해줄 수 있는가? 또 구체적으로 어떻게 광주의 이야기에 관여하게 되었는가? 팀 셔록: 그 여정은 내가 1959년~1961년에 서울에서 살았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구럼비 노래

1 수백 년 동안 우리는 이 섬에서 살아왔지 한라산의 그림자 안에서 어떤 울타리도 도둑도 없이 열매와 물고기를 나누면서 나는 할머니와 잠수도 했지 그러나 이젠 파괴의 무리가 들어와 이 모든 것을 짓밟아버리는 구나   (원곡 후렴구) 나는 알아야겠네 친구여 나는 알아야겠어 친구여 내가 어디를 가든 굶주린 이들이 내게 물어 동료와 친구들 모두가 내 옆에서 쓰러져 가는데 나는 알아야겠어 친구여 나는 이제 알아야겠어   2 게와 돌고래는 내 어린 시절의 벗이었지 우리는 구럼비 위에서...

내가 연애 ‘을’이 된 이유 / 서울에서 잠시 즐겨본 ‘킨포크 라이프’

1 내가 연애 ‘을’이 된 이유 지금 어떤 30대 남자는 얼마나 더 쪼그라진 삶을 사느냐의 문제로 연애 ‘을’이 되기도 한다. -- 내 여자친구는 운다. 어제도 울었고, 그제도 울었다. 아무래도 눈을 보며 대화로 풀어도 부족한 문제를 울고불고 어물쩍 해결하려는 것 같다. 한 여자와 만나고 헤어지길 대략 열 번쯤 반복하다 최근 가까스로 결혼한 친구는 말했다. “그런 앤 결혼하고도 똑같다. 정리해버려. 아니면 하자는 거 다 들어주든가. 우리 알지? 요새도 싸울 때 헤어지자는 말...

미술관에 간 디자이너_김영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선호하는 디자이너는 많지만, 김영나처럼 꾸준히 부름받는 디자이너는 없다. 지치지 않는다는 것은 고갈되지 않는다는 말이고 그건, 단단함에서 나온다. 국제갤러리는 최근 김영나와 전속 작가 계약을 맺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상업갤러리에서 디자인 베이스의 작가를 콜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에서 설치나 조각 등의 커미션 작업을 갤러리에 의뢰하는 경우가 있는데, 순수미술 작가분들에 비해 좀 더 유연한 부분이 있으니 이런 일들을 도모해보자는 것이죠.” 겸손하게...

아시아의 보물지도 : 시안

중국 동쪽 중앙부, 부산에서 비행기로 2시간 30분 거리에 시안(西安)이 있다. 시안은 한나라 이후 장안(長安)이란 이름으로 1100여 년 동안 무려 13개 왕조의 수도였다. 시안이라는 도시를 말하면 열에 열 명은 진시왕의 병마용(兵马俑)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실제 시안을 방문하는 많은 관광객들은 일명 회족거리(回民街)와 종루 주변, 그리고 병마용을 구경하기 위해 시안을 방문하는 방법이 대부분이다. 시대는 바야흐로 배낭을 메고 자신만의 여행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몸+생각 일기

2014년 8월 10일 공연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정지하는 순간 없이 움직임을 유지하며 신체를 얼마나 왜곡시킬 수 있는 알아보는 실험이다. 이것이 이번 작업의 주제이자 내용 그 전부다. 여느 때처럼 연습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거울을 보며 몸을 이리 저리 구부리고, 휘젓고, 내던지기를 하던 중 난데없이 나는 도대체 왜 움직이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춤을 추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전생에 혹시 안데르센의 동화 의 주인공 이었을까? 이런저런 공상들의 출처를...

현악기 이야기_악기 복원가

세상에 직업의 종류는 정말 다양하죠? 그 중에서 현악기를 다루는 직업들도 의외로 많은 부분으로 나뉜답니다. 현악기 연주자, 현악기 제작가, 현악기 수리 및 복원가, 활 제작, 현악기 딜러(Dealer), 현악기 전문가(Specialist), 현악기 옥셔니어(Actioneer). ‘현악기 세상’을 알기 위해선 우선 이들을 다루는 전문직업의 세계를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이제부터 이 직업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보도록 할게요! 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악기는 피에트로...

30대 강의 킬러들

‘동의보감+사기’ 강의의 수강생 대부분은 30대 여성이었다. ‘길 잃은 30대들’에 도매급으로 묶이는 기분이었다. “회사를 그만두면 낫는 병이야.” 난소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동료 A가 말했다. 걸핏하면 병인을 ‘스트레스’라는데 요즘엔 좁혀서 ‘회사’ 탓으로 돌린다. 나도 얼마 전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다. 지나치게 따뜻해서 달큰한 냄새가 나는 5인실에 2주간 입원하면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남는 게 시간이니까. 꾸준히 운동했어도 병에 걸렸다는 배신감, 잘 살고...

당신의 안전 비용

호신용품을 쇼핑하고, 주짓수를 배우려고 시간과 돈을 들인다. 사회는 내 몸은 내가 지키라고 압박한다. 좀비 세상에 홀로 남은 여전사의 처지와 비슷하다. “서울중앙지검 형사 조정실입니다.” 검찰청으로 출두하라는 문자가 왔다. 지난해 11월, 경찰서에 접수된 사건이 이제 검찰에 넘어간 듯싶다. 밤에 귀가하던 중 택시 기사와 시비가 붙었고, 그에게 포박 당해 끌려갔다. 나는 포박을 풀기 위해 기사의 손가락을 물었고, 경찰에 신고했다. 내 인생 세 번째 경찰서행이었다. 처음 두 번...

교포생활자 식탁_기름떡볶이

  Concept 호주에 살고 있지만 한국과 동양 음식을 못잊어 어떻게든 아시안 버무림(?)밥상을 차려먹고 사는 여자와 그 여자가 못잊는 고향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여자의 글로벌 콜라보레이션 일러스트 다이어리 Ingredients 떡볶이 떡 (ricecake) 300g 고추가루 (dried chilli powder) 2T 고추장 (chilli paste) 1T 다진 마늘 (minced galic) 1T 간장 (soy sauce) 1/2T 참기름 (sesame oil)...

작은 섬에 책방. 시작에 서다

며칠 전부터 동네 방송 스피커를 통해 안내가 흘러나왔다. “각 가정에서 기르는 개를 풀어 놓지 말고 묶어 두시기 바랍니다.” 평상시에는 해안가 청소 안내나 해녀들의 소집, 동네 행사 등의 방송이 대부분이었는데 좀 의외의 방송이 귀를 의심케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또다시 들리는 방송. 이번엔 개들을 묶지 않을 시 포획 조치, 즉 개들을 잡아들이겠다는 내용이었다. 짧고 굵고 단호한 멘트였다. 더럭 겁이 났다. 이제 시골길에서 개들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일까. 꼭 개들이 없어지는...

“나는 좋은 사람인가?”

"결혼식 당일, 전 남자친구를 떠올렸나?" "미혼인척 하기 위해 반지를 뺀 적이 있는가?" "결혼 후에 다른 사람과 잠자리를 가진 적이 있나?" 미국 리얼리티쇼 ‘The moment of truth’는 진실을 말할수록 많은 상금을 가져 간다. 참가자에게 거짓말 탐지 센서를 달아 대답의 진실, 거짓 여부를 판단하는 것. 물론 거짓말 탐지기의 신뢰도에 의심이 가긴하나, 상금이 탐난다면 어찌 되었건 진실에 가까운 대답을 할 확률이 높기에 엉터리라고만은 할 수 없는 구조다. 10만...

1095끼의 잡채가 남긴 유산

좌혜선 ◦ 냉장고, 여자#1 ◦ 장지에 분채채색 ◦ 194x130cm ◦ 2009 할머니는 아들의 밥상에 3년 동안 매일 잡채를 올리셨다. 대학 1학년생이었던 나의 아버지가 밥상에 올라온 잡채를 보며 '맛있다'라고 말 한 이후로 매일, 당면을 삶고, 당근과 표고버섯과 대파를 채를 쳐 썰고, 기름에 그것들을 각각 따로 양념을 해 볶은 다음, 삶은 당면에 섞어 참기름과 간장과 설탕으로 간을 하는 길고 고된 과정을 기꺼이 하셨다고 한다. 우리 막내아들은 잡채를 좋아한다고, 신이 나...

예술섬을 항해하는 서퍼들을 위한 조언

2년 전, 책을 한 권 출판했다. 첫 번째 저작이었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예술세계에 몸 담으며 기자와 저술가로 활동해왔다. 이 책은 2015년 봄, 두 달 동안 유럽 6개국(아일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에 있는 아트 레지던시 13곳을 경험하고 쓴 책이었다. 그간 활발한 취재를 통해 다양한 예술종사자들을 만났고,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예술 세계의 중심과 이면을 두루 경험했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책 출간을 염두에 두고 단독으로 기획한...

조각 같은 도시의 더 작은 한 조각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십대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나는 내가 사는 작은 섬을 떠나 큰 세계를 탐험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처음으로 내가 자란 집을 떠난 뒤엔 숱한 이사의 연속이었다. 매해 이사를 다닌 건 물론이고, 2년에 한 번 꼴로는 도시를, 3년에 한 번 꼴로는 나라를 옮겨 다녔다. 여전히 내년 이맘 때 내가 어디에 살고 있을지 모르는 처지이다. 이런 나에게 정착이란 아직까지 멀기만한 꿈이지만, 내가 존재한 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

다그와 현정의 국제결혼

우리는 결혼에 관한 생각이 너무나 다르다 서로의 친구들 삶도 너무나 다르다   내 친구 (대부분 78년생에서 84년생사이) 친구1- 2년연애 25살 결혼 6년 뒤 출산 친구2- 늘 싱글 친구3 -6개월 연애 23살 결혼 1년 뒤 이혼 간간히 연애 친구4- 1년 연애 24살 결혼 1년 뒤 출산 1년 뒤 또 출산 친구5- 3년 반 연애 (1년 동거 포함 ) 35살 결혼 친구6- 2년 연애 27살 결혼 2년 뒤 출산 1년 뒤 또 출산 친구7- 6개월 연애 31살 결혼 1년 후 출산...

PRACTICE Everyday Life, Part I

잭 번햄은 1968년, 한스 하케와 로버트 모리스 등의 개념미술가와 미니멀리스트들이 주창했던 ‘형체를 없앤 명제’로의 변화에 주목했다. 이러한 관찰로 그는 기존에 이 두 진영을 다르게 범주화하던 관습을 깼다. 잭 번햄은 이들을 ‘경험을 창조해내는 큰 틀’로 음미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한편, 관중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예술작품을 보는 사람의 존재가 예술작품의 필수 구성요소로 여겨지게 되었다. 전후세대 예술가들은, 모더니스트들이 주장했던 예술의 자주성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살고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제주에서 처음 맞이했던 아침이 생각난다. 늘 같았다. 넓은 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에 저절로 눈 뜨고,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켠 다음, 덮고 잤던 이불을 그대로 들고 마당으로 나가 빨랫줄에 널었다.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내 고향 한옥에서도 비슷했다. 안과 밖, 건물과 자연의 경계가 흐릿한 집만의 특징이다. 언제고 자연의 흐름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살아 있는 자연을 매 순간 느끼며 사는 것은 늘 낭만적이진 않다. 어느 땐,...

피를 데우는 시간

박주애 ◦ 현장On the Scene ◦ 장지에 아크릴 ◦ 162.2x672.6cm ◦ 2015 박주애(Park Ju Ae)는 데생 선 긋기 연습하던 때부터 작가로 활동하는 지금까지, 방금 손으로 꼽아봤더니 거의 13년 정도를 함께한 친구이다. (짧아 보이지만 내가 살아온 인생의 약 반 정도를 차지한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인터뷰 대상자로 선뜻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고심 끝에 인터뷰 약속을 잡았지만 오랜만에(사실 그래봤자 약 열흘만에) 만난 친구와 피자와 치킨을 먹다보니 별...

프랭크

Frank #2, mixed media, 90X72, 2017, 이윤 영화 속 프랭크는 가면을 쓰고 노래를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면을 벗지 않고 살아간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것은 프랭크의 가장 큰 특징이 되었고 곧 그의 정체성이 되었다. 고집스럽고 반쯤 미쳐 있거나 혹은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천재 아티스트 프랭크. 그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말하지 않기 위해 나머지 행동을 한다고 해도 좋겠다. 프랭크는 프랭크대로 있어야...

씨위드 커피 seaweed coffee

Illustrator。 Adehla Lee Adehla Lee left her hometown Busan to move to Seoul, and moved again to NYC searching for a fun and exciting life. In terms of her art, “fun” is also the most essential element. She is trying so hard to not make something boring, complicated,...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 #1 Sun에게

곽선경 ◦ Rolling Space(공간 말기) ◦ 2015 ◦ digital print on poly vinyl chloride ◦ 213 x 626 cm ◦ 사진:갤러리 스케이프 제공   Sun에게, 몇 년 전인지 이제는 까마득합니다. 당신의 작품, 아니 당신을 처음 만났던 때로부터 벌써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네요. 이렇게 당신께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제 스스로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어 오랜 시간 고민 끝에 지금에서야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2009년...

이상한 나라의 인디게릴라와 다가앉아 마음 내어주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족자카르타, 그곳은 전통적으로 인도네시아 자바섬 본토의 자바 미술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문화적인 도시이다. 한적하면서 전형적인 인도네시아의 환경과 기후를 보존하고 있는 아름다운 이 도시는 자바의 문화유산으로 남아있는 빛나는 보로부두르 사원을 비롯한 푸른 자연이 언제나 싱그럽고 건강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족자가 초행길이라 동서남북의 방향감각을 잃고 오직 구글맵과 택시를 이용해서 그녀가 찍어준 주소로...

타임캡슐을 타고 떠나는 벤쿠버 여행기- 타임캡슐을 타고 싶었던 한 홍콩인의 바람을 담아

2017년 1월 말, C&G(Clara & Gum, 2007년 홍콩 작가 클라라청과 검쳉이 만든 아티스트 그룹)는 관둥 출신의 캐나다인 작가 레미 소(Remy SIU)의 교류 프로그램 덕택에 벤쿠버에 방문하게 되었다. 우리는 벤쿠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지만, 1990년대에 홍콩인이 가장 많이 이민간 도시여서인지, 그곳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두 도시의 이러한 역사적인 관련성에도 불구하고, 이 두 지역의 시각예술과 현대미술의 영역을 연결해 생각해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Owning art

나는 서울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삼남매중 장녀로 태어나 자랐다. 자라는 동안 부족함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넘치는 여유가 있는 집안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열심히 돈을 벌어 삼남매를 키우고 교육시키며 약간의 여유가 생기면 가족여행을 간다던지, 외식을 한다던지, 취미 골프를 친다던지 정도였지 작품이나 값비싼 장식품, 유명 디자이너의 가구를 사 모을 정도의 여유까지는 없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골동품이나 미술품 같은것도 없었을 뿐더러. 가끔 온가족이 주말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고생하며 여행한다는 것

고생하며 여행한다는 것 류연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여행을 다녔었다. 중국과 관련된 일을 하신 아버지 덕분에 초등학교 때 처음 중국을 가 봤고 그 이후로 방학이면 늘 어딘가로 떠나있었다. 부모님은 학교 공부나 시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세상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어서 다른 친구들이 학원을 가는 동안에 나는 여행을 떠났다. 여행이라고 하면 재밌는 것을 구경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호텔에서 쉬는 일종의 휴가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내가 다녔던 여행은 고생의...

30대 강의 킬러들

“회사를 그만두면 낫는 병이야.” 난소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동료 A가 말했다. 걸핏하면 병인을 ‘스트레스’라는데 요즘엔 좁혀서 ‘회사’ 탓으로 돌린다. 나도 얼마 전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다. 지나치게 따뜻해서 달큰한 냄새가 나는 5인실에 2주간 입원하면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남는 게 시간이니까. 꾸준히 운동했어도 병에 걸렸다는 배신감,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 앞으로 1년간 무리한 활동은 금지라고 했다. 최소 3개월은 수영도, 사우나도, 정기권을 끊은...

노르웨이와 한국-결혼 2년차

  결혼 2년차, 우린 부부지만 각자의 나라에서 떨어져 산다. 일 년에 3달 정도는 같이 지내지만… 결혼 후 우리가 많이 받는 질문들이다   현정이 받는 질문들(너무 많아 3회이상 받은 질문) 돈 관리는 누가 하냐? 남편이 생활비는 보내주냐? 출산 계획은 어떻게 되냐? 남편 직업이 뭐냐? 노르웨이 남자는 어떠냐? 너도 연금 받을 수 있냐? 너도 노르웨이 국적이냐? 어떤 언어로 대화하냐? 남편에게 무슨 음식 해주냐? 노르웨이도 명절이 있냐? 노르웨이 사람은 연어 많이 먹냐?...

혐오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취향을 말할 때

  톰 밴더빌트의 을 읽고 씁니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이하며, 친구와 어둑해지는 강둑을 걷습니다. 벌써 몇 시간이나 떠들어댔지만, 우리의 대화는 끝나지 않습니다. 그녀가 만들어 먹었다는 감자 짜글이 레시피부터, 꼬리뼈께가 다 까지도록 타고 있다는 공유자전거 따릉이, 비 오는 날 함께 본 영화 레이디 맥베스, 꽤 과감한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 집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그녀의 새 남자친구, 메갈과 일베까지......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제법 닮아온 친구이지만,...

스펙타큘러버나큘러 (2부)

II. 팀 파슨스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은 그리 예술에 조예가 깊지는 않다. 예술에 대한 관심은 실제로 팀이 학교를 다닐 때 시작되었다. 팀은 열세 살때 그래픽 커뮤니케이션 수업을 받았는데, 학생들이 디자인이나 기술 드로잉 중 하나를 골라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어린 팀은 디자인을 선택했는데, 그게 드로잉보다 더 재밌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부를 더 할 수록 저는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일자리를 제일 빨리 얻을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어요. 처음 코스 중 하나를 영국...

시대를 관통하는 작품 치료사 Fine Art Conservation Group 김수연 복원사 인터뷰

미술계에서 작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평론가, 미술사가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이 바로 미술품 복원사이다. 하지만 다른 역할들에 비해 늘 주목을 받지 못했고 일반적으로 손상된 작품을 복원하는 기술자로만 저평가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복원사란 한 점의 작품을 복원하기 위해서 그 작가의 작업방식, 그 시대의 미술사, 재료의 성질, 작품의 스토리 등 미술사가 못지않은 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마치 작품을 창조한 작가의 손으로 빙의된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완벽함과...

그 숲의 이유

근 10년을 선택적 이주민으로 살다가 제주에 내려온 지 1년이 되었다. 이주민이라는 단어 앞에 ‘선택적’이란 말을 붙인 이유는, 아무도 그리 하라 시킨 적이 없었는데 그저 스스로 좋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 선택적 이주민의 삶을 가능하게 해준 원인은 바로 ‘사진’.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하며 집을 떠났고 사진작업을 진행하며 그 방향성에 맞춰 삶의 지형도 조금씩 넓어졌다. 그렇게 스스로 옮겨 다니다 보니 사진작업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이주’와 ‘정착’의...

계단

N. Schmidt, Pferdegasse 19, 48143 Münster, Deutschland 우리는 계단을 오르고 있다. 계단은 수차례 이어져 오르다 보면 몇 층인지 잊게 된다. (그는 늘 사람들을 그의 공간으로 초대하기에 앞서 어떠한 통로를 걷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그의 공간에 들어설 준비를 한다.) 어느 한 층에 다다르자 문지기 남자가 있다. 그는 우리가 가야 할 문을 알려준다. 그 문을 열자 또 다른 두 개의 문이 있는 작은 복도이다. 그 중 오른쪽의 문은...

삶을 담아낸 말, 셔머샤 네이

  달라도 너무 달라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단연 '문제없어'라는 의미의 “셔머샤 네이”이다. 이 말을 하루라도 듣지 않고 넘어간 일이 날이 없을 정도였다. ‘행복지수 1위의 나라라고 하더니, 정말로 사람들이 긍정적이네’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이 말을 들을 상황이 되고 보면 뒷목을 잡게 될지도 모른다. 매사 이러한(?)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어쩌면 이러한 생각들이 행복지수 1위를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이들이 이...

공평한 것. 그리고 공평하지 않은 것.

, 장지에 분채채색 , 130x162cm, 2015     남동생은 선천적으로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어느 날 친구들 앞에서 자기 몸의 신비를 슈퍼히어로의 능력인양 자랑하는 모습에 놀란 부모님이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받게 하자, 귀 속 손톱보다 작은 뼈의 모양이 어그러져 잘 들리지 않는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수술로 열어 보면 고칠 가능성도 있다고,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전신마취를 해야 할 부담이 있고 다른 쪽 청력은 정상이니, 이대로...

유럽 힙스터들의 성지, 테크노 도시 베를린

      1년 365일 음악이 멈추지 않는 도시가 있다. 클럽섬 이비자가 아니다. 바로 독일의 수도, 베를린이다. 딱딱하고 놀 줄 모를 것 같은 독일에서 밤낮없이 테크노 파티라니. 베를린은 독일의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무질서하며 자유롭다. 거리는 온통 그라피티로 덮여있고 개성 강한 세컨핸드샵과 다양한 플리마켓이 성황을 이룬다. 낮은 물가 덕분에 유럽의 젊은 힙스터들과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특유의 멀티컬츄럴하고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베를리너들은...

찰나와의 조우

순간/명사/ -개인의 인생과 경험 속의 조화롭고 균형적인 찰나의 시기 -갑작스럽고 즉흥적인 긍정적인 경험 자연은 가장 최고의 순간들을 선물한다. 동트기 전의 바다 위, 밤 하늘에 빼곡히 차있는 별들과, 차가운 모래와 그 위를 파도가 넘실거린다. 그러다 해가 수평선위를 뚫고 올라오기 직전의 순간, 별들은 즉시 포근한 파란, 회색 빛으로 변해버린다. 자연은 이런 순간들을 기꺼이 일찍 일어나는 이들에게 선사하며, 이러한 보상과 고독은 불편함마저 감수하게 만들어 준다. 그렇다면...

교포생활자식탁2: 두부타코

  ‘오늘은 또 뭘 해 먹나’ 는 호주에 살면서 하는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다. 인건비가 비싸 외식비용이 비싸기도 한데다 식재료는 워낙 싸고 저녁 시간도 여유로운 편이라 집에서 해먹기 아주 좋은 환경인 셈. 어려운 건 딱 하나, 메뉴 선정이다.   나는 ‘입맛 빼곤 다 외국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이 쪽 문화권에 잘 적응해 온 편이지만 도무지 이놈의 토종 입맛만은 타협이 안 된다. 서양요리에서는 깨소금 격인 치즈조차 입에도 안대니 말 다 했지. 그런 내가 아주 가끔, 서양...

책방 이야기인지 내 이야기인지 모를 이야기

서울에서 40년 넘게 살았지만 내 집은 갖고 있지 않았다. 제주에 부동산 열풍이 한참 몰아칠 때 주변에서는 어서 더 오르기 전에 집을 사야한다고 했지만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서울에서 전세를 살고 있었을 때에도 2014년에 제주에 내려와 연세를 내고 살면서도 집 없는 것이 그다지 아쉽지 않았다.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뛰어도 내 알 바 아니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사람들은 세상물정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이야기할지 몰라도 집이란 것은 필요하면 사게 되는 것이고, 세 들어 살아도...

작은 책방 안 그림책

“길의 모양을 보면 내가 어디 있는지 알지.” 열네 살 때, 코리아극장의 구석에서 본 구스반산트의 영화, ‘아이다호’의 대사다.   나는 오래도록 고향을 떠나 있었다. 이십여 년을 살고 있던 서울에서는 수평선을 마주하는 게 일상이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오래도록 그리던 고향에 돌아와서는 달라진 “길의 모양”에서 이방인처럼 서성거렸다. 어느 날, 무작정 ‘길’을 따라 달렸다. 작은 마을, 어느 골목에 이르러 책방 문을 ‘소심하게’ 열고 들어서자 Pink Martini의...

끝나지 않은 비극, 노동자의 죽음

노동자들의 희생은 잊히고 '기적'만 남았다. “평화시장의 공장들이 닭장처럼 되어 있고 어두컴컴한 곳에서 어린 여공들이 쉴 새 없이 하루하루 자신의 목숨을 갉아먹고 있다. 하루 16~18시간씩 일을 하면서도 하루 일당은 불과 커피 한 잔 값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 고(故) 조영래 변호사의 중 방글라데시는 1980년대부터 '한국'을 모델로 삼아 또 다른 '한강의 기적'을 꿈꾸며 섬유산업을 키워오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저렴한 인건비와 젊고 풍부한 노동력으로 꾸준한 성장을...

물질의 상호이동과 우주의 평형

사진. 김옥선 숲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케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기묘한 일이다. 저 숲 속, 정확히 어느 지점인지도 알 수 없으나 내가 익숙한 거기, 내 고향, 그러니까 “내 땅”이라는 그 곳에 나대신 내가 모르는 한 남자가 서 있다. 그리고 나는 낯선 땅의 어느 곳에 이물질처럼 섞여,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케빈, 나 그리고 우리가 속한 공간과 공간 사이의 대칭성과 이상한 일방향성이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거울을 왕복하며 끝없이 맺혀가는 상처럼 꼬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