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

잘츠부르크 아트 씬 3 – 잘츠부르크 미술협회(Salzburger Kunstverein)

  지난 몇 개월 간 과일즙이 배어나오는 껌을 즐겨 씹었다. 달달한 맛이 가두어 놓는 짧은 몇 분 동안, 나는 투명한 장막을 치며 여러 궁금증에 빠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매번 지치지도 않고 수면 위로 떠오르던 질문들이 있었는데, 그 중 미술제도1)에 관련된 몇 가지는 예컨대 이러했다.   미술제도는 예술가에게 어떤 목적성과 책임감을 부여하는가 : 어쩌면 그 목적과 책임은 미술가에 대한 부차적인 설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술제도 또한 스스로 일정한...

애나 샤피로 평론 – 세개의 색 (마젠타, 녹색, 파랑 ) 2015

애나 샤피로의 작업은 조각과 페인팅 사이를 넘나든다. 그녀의 작업은 특정한 형태를 가진 고전적인 예술의 개념에 반한다. 그녀의 작업은 어느 위치에 놓이더라도 스스로 자연스레 자리잡는 제2의 피부처럼 어디서든 유연하게 형태를 지닌다. 주어진 공간은 작업이 이루어지는 무대이자  작업과 관련되며 작업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이 전시의 다른 많은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녀의 유대인 가족사와 그녀의 정체성과 그녀의 예술작업들은 확고하게 정의되지 않으며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프랑수아 피사피아- 김수정 평론

김수정 작가의 작업 의도와 주제를 대면했을 때 느껴지는 개인적인 친밀감은 관음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람들의 각기 다른 삶과 개인적인 아픔에도 대입할 수 있다. 마치 좋은 이별 노래가 꼭 이별이 아닌 삶의 힘든 시기나, 아닌 그 어느 때든 삶에 대한 열렬한 찬가처럼 들리는 것처럼. 이는 개인의 사생활을 더 넓은 관중에게 공유하는 솔직함과 작가의 넓은 아량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하다. 작가는 단순히 자신의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풀어나가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져지 쇼어(Jersey Shore)

프리츠 보른슈튁가 ZOB라고 말하면, 승객으로 반쯤 찬 영혼의 야간 버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리는 모두 감이 온다. 그곳은 바로 끝없는 요구가 부조리의 과다복용으로만 잠잠해지고, 자신의 죽음을 손에 거머쥔 소비사회의 황량한 열대 지방.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거기 누가 부엌 라디오 좀 제발 꺼줄래요?   이른바 베를린 중앙 버스 정류장인 Zentraler Omnibusbahnhof Berlin, 줄여서 ZOB는, 아아, 중앙에 있지 않다. 실은 ZOB는 외곽에...

김진수 작품론_ 낯익고 두려운, 친숙하고 낯선 어떤 풍경과 감정에 대해

현대미술에서 작가를 특정 장르나 소재, 사조에 가둔다는 것은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창작물을 굳이 어떤 기준에 껴맞추려는 노력은 대체로 실패하거나, 결국 실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김진수의 작업을 동양화가라는 특정한 장르에 위치시킨 후에 이 글을 써보려고 하는데, 이건 곧 실패를 각오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불가피하게도 동양화라는 굴레 안에서 작가의 매체실험과 소재실험이 부단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글을 쓰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부터 이...

위병으로서의 작가, 위병소 미술관 설립자_김서정

화순 전경대 터 내 위병소 미술관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초시 안덕면 화순문화로 22번길 15-1에 위치한다. 2016년 10월 1일 개관해, 2주마다 한번씩 전시를 교체하고 있다. 대표전시는 <화순전경대-장소탐구>, <위병선임들>, <문,침범과 공간>, <유연한 조각>, <대피소-이곳으로 피하십시오>, <序詩다시쓰기>, <단 한사람을 위한 전시: 금연캠페인>, <잃어버린마을_유적발굴> 등이다....

노동자의 선택 (Worker’s choice)

청바지는 동시대의 코르셋이다. 한 개인이자 여성으로서, 그리고 서양인으로써 우리는 청바지를 입는다. 청바지는 자유롭고 참된 서구사회를 대표한다. 수백 년간 여성의 몸은 청바지 광고를 위해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정말 이 패션 소재가 여성에게 그랬을까? 미리암 콩슈탓드는 <노동자의 선택 (Worker’s choice)> 작품에서 청바지가 어떻게 지속적으로 여성들의 몸을 연출하고 모양을 만들었는지를 탐구한다. 더불어 역사적으로 그리고 동시대적으로 데님과...

미해결 문제의 아름다움에 관해

불가사의한 소수(素數). 속을 알 수 없고 변덕이 심한, 마치 고양이들 같은. 순응하지 않는 존재들. 무한대로 많지만 지금껏 그 누구도 그들의 등장과 행동을 예측할 만한 제대로 된 공식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그들은 꼭 있어야 하는 존재다. 고양이와 소수. 그들은 우리가 순식간에 황홀해진 나머지, 다음과 같이 선언하게 만들 정도로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자극을 준다 – 고양이가 없는 삶, 소수가 없는 삶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매력 있지는 않다고. 그것은 아마 비밀이...

심적 공간으로서, 회화 (Painting, as a Space for Internal Mind)

전희경은 이상향이라고 하는 가상의 세계를 회화로 표현해왔다. 그곳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세계인만큼 시각적 묘사에는 현실 또는 자연이 적절히 투영되어 이뤄진다. 그간 그의 작업을 설명하는 데에는 이상향 외에도 무릉도원, 현실도피, 열망, 은신과 같은 단어가 빈번하게 쓰였다. 그의 작업은 시각적으로나 빈번히 쓰이는 어휘들로나 동양 산수화의 영향도 일면 감지된다. 이 글에서는 전희경의 회화를 현실과 이상의 사이 공간에 놓인 것으로 보고 그간 그의 회화가 어떤 제스처를 취해 왔는지...

“바람이 구름을 걷어버리듯..”

바람이 구름을 걷어버리듯, 아주 평온하게 한 해가 가고 어김없이 또 새해가 찾아왔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의 반복이지만, 한 해의 새로운 출발선을 마주한 사람들은 새해의 희망찬 기운에 고무되어 으레 저마다의 소망과 목표들을 마음 속에 새긴다.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마음 속에 아로새긴 소망들은 모두 다르겠지만 각자가 꿈꾸는 안락한 미래이자 이상향에 닿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음은 똑같을 터, 그것은 아마도 현실의 삶이 버거울수록 더욱 간절하고 강렬할 것이다. 이렇듯...

잘츠부르크 아트 씬 2 –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Galerie Thaddaeus Ropac)

(문을 열고) 들어가며   ‘미라벨플라츠(Mirabellplatz)’로 시작되는 주소, 그리하여 미라벨 궁전과 맞닿아 있는 곳. 모차르테움 국립음대와 함께 19세기의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는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Galerie Thaddaeus Ropac)은 과거에 대해 영민한 답가의 형식을 취한다. 마치 보이지 않는 다리를 놓듯이, 모차르트와는 영 접점이 없어 보일 정도로 꽤나 현대적인 모차르테움의 건물과 미라벨 정원의 흐드러진 꽃들 속 관광객들 사이에 위치하여...

잘츠부르크 아트 씬 1 – 잘츠부르크 현대미술관(Museum der Moderne Salzburg)

  0. 자가당착의 문제를 생각한다. 보편성에 매달리는 것들, 이미 증발되어 버린 것들, 그리고 존재하는 방법을 잊은 것들. 언제였는지도 모를 날에 누군가는 힘찬 목소리로 현대의, 또는 동시대의 미술을 논해보겠다고 말했을 터이다. (어쩌면 바꾸어보겠다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름의 야망에도 불구하고 몇몇은 그 누구의 기억 속에도 존재하지 않는 도전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져 진공 상태로 되돌아간 것들을 우리는 숱하게 마주해왔다....

구름이 해를 가리면 빛나던 돌은 어둠 속에서 꿈틀거린다

  검은 돌이 있다. 불어오는 바람에 마른 표면을 드러낸 검은 돌은 흐르는 시간을 멈추고, 주위의 공기를 빨아들일 것 같은 깊은 색을 지녔다. 그래서인지 이것은 수면 위에서 반사되어 공기 중으로 가볍게 흩어지는 빛과 달리 제법 묵직하게 화면을 누른다. 그리고 화면 곳곳에서 서로 포개지거나 무더기로 뭉쳐 있다가 다시 물이 차오르는 시간을 맞이하면 은빛 물결 속으로 조용히 모습을 감춘다.   조기섭은 제주의 풍광을 소재로 대상에 대한 심리와 사유의 방식, 그리고...

김범균 작가론

우리가 유독 시각적인 것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성급한 일반화인가. 반기를 들 수 있는 자는 누구이며, 그 증거는 무엇인가.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 볼 때, 지금 우리는 가장 덜 변증법적이며 가장 많이 즉응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이미지가 그것을 해냈다. 사색과 상상력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이미지는 자신의 영토를 확장했다. 긴 논쟁과 장문의 정의는 단 한 장의 사진, 단 한 편의 영상에 진실규명의 권한을 위임했다. “적게 볼수록, 더 많이 상상하게 될...

바다밭을 일구는 제주의 잠녀들

화산섬과 잠녀 제주도는 한반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화산섬이다. 약 백이십만 년 전, 용암 분출과 퇴적작용을 반복하며 형성되었다. 섬 한가운데에 있는 해발 1,950미터의 한라산(漢拏山)은 먼 곳을 오가는 항해자들의 이정표 역할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이곳 섬사람들에게는 문화를 태동시킨 모태였다. 동서로 긴 타원형을 이루고 있는 섬의 끝자락은 태평양으로 이어진다. 멀리 적도에서 올라오는 커다란 쿠로시오 해류(黑潮海流)는 난류성 어족(魚族)을 이끌어 북반구로 올라오다 제주에...

비움과 채움의 언어

  제주시 화북 나지막한 포구, 돌담으로 만들어진 창고가 작가의 작업실이다. 바다와 잘 어울리는 돌담 창고가 예쁘다. 청년작가의 작업실 치고는 세월의 흔적과 작업 도구들의 손때가 물씬 풍기는 공간이다. 모름지기 작가에게 작업실은 생산의 터이자 사유의 공간인지라 각기 색다른 향기를 품고 있다. 단순히 생산만 하는 작업실의 냄새와는 다른 깊은 향기가 나는 건 어떤 연유에서 일까. 작업 도구들과 전통적인 작업 방식의 잔여물들 때문일까. 모처럼 땀 냄새나는 젊은 조각가의...

강태환의 틈_비워져야 사는 어떤 공간에 대한 이야기

강태환의 틈_비워져야 사는 어떤 공간에 대한 이야기   “돌을 자연성 그대로 한없이 인간에게 다가오게 하는 일. 철판을 인공성을 띤 채 한없이 자연에 다가가게 하는 일. 서로의 다가감은 제3의 그 무엇에, 하나로 맺어진다. 그리고 겹쳐진 그 어긋난 부분이 세계의 통풍을 가능하게 한다.” – 이우환   틈이란 긍정을 의미하던가 부정을 말하던가. 빈틈없다는 표현은 칭찬이던가 욕이던가. 빈틈이 많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었나 나쁜 사람이었나. 그나저나 틈이라는 건...

상상이 빚는 차가운 손_천재가 사는 실패의 시간

상상이 빚는 차가운 손_천재가 사는 실패의 시간 반짝이는 임기응변과 재치, 시대를 읽는 눈이 현대미술가를 만든다. 타협을 모르는 집요함과 인내심에 시간 들여 익힌 기함할 테크닉이 결합돼 장인을 만든다. 이호철은 그래서 동시대 미술가보다는 장인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 있다. 이제 첫 개인전을 치르는, 앞날 유망한 젊은 작가에게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 아니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라는 존재를 과감히 떼어내고 작품만 보자. 정성 들인 시간이 함축된, 잘 다듬어진 기술이...

슈퍼플렉스의 도구들

2~3마리의 소를 키우는 원주민 가족을 위해 바이오 가스 플랜트를 만들고, 오픈 소스 기반의 맥주 제조법을 오프라인 월드에서 유통시키고, 50개 이상의 국경을 넘어 이민자들의 향수 어린 물건을 한곳으로 불러들이는 일. 가당치 않을 것 같은 일들을 현실에 존재시키고야 마는 3인의 게릴라, 슈퍼플렉스.   지난 10월,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터바인홀의 주인공으로 슈퍼플렉스(Superflex)가 낙점됐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올해 3회째를 맞은 ‘현대 커미션’은 현대자동차가...

박형근의 시학(Poetics)

풍경이 주 대상으로 등장하는 사진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풍경 사진에서 익숙한 미래지향적 성향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특히 이런 유형의 사진들은 전형적으로 가옥, 도로 그리고 온갖 종류의 인공 구조물들을 보여주며 우리를 예측 불가능한 미래의 사건에 대한 관심에 접근하도록 유도한다. 주거 공간은 악천후와 위험 요소로부터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제공하기 때문에 지어야 할 타당성이 있으며, 도로도 우리를 원하는 목적지로 향할 수 있도록 한다....

강요배: 시간 속을 부는 바람

강요배_구름이 하늘에다_162×130㎝_캔버스에 아크릴릭_2015     ‘방랑이 끝을 맺는 오두막에는 친구들과 한 마리 「예언의 새」가 있다. 친구들 중 한 녀석은 「나」이고, 다른 녀석은 「신(神)」이고 하나는 낯이 설은 친구다. 나는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어마한 체험을 그들에게 전하고 그들을 나의 체험에로 이끌어 그들과 더불어 한 세계 속에서 한 운명으로 존재하는 「나」를 분명히 확인하기 위하여……...

소박한 염원들을 마주하는 진심어린 위령제 : 지슬

우연하게 술자리에서 마주한 오멸 감독은 알고 보니 나의 고등학교 선배이면서 이전부터 개인적으로 응원하던 자파리극단과 테러제이(Terror J)의 수장이었다. 몇 년 전 별 기대 없이 극장에 갔다가 엄청난 충격을 받고 언제 한 번 기회가 된다면 직접 만나보고 싶었던 이를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개인적으로 한국 영화계에서 기념비적이라고 생각하는 <지슬>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개봉 이후 4년이 지난 지금에서 뜬금없이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제주...

“강남스타일” 현상 탐구 연재를 시작하며

석사학위를 위해 완성한 논문을 근 4년만에 다시 읽자니, 내용들이 이미 믿을 수 없을만큼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었다. 오늘날, 특히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 기술개발의 속도가 빨라지고 전세계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함에 따라 대중문화도 유행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새로운 소셜 미디어 기술을 통해 컨텐츠는 거의 순식간에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게 됐다. 점점 사용자가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발전한 모바일 소프트웨어는 보통사람들이 손가락을 몇 번만 누르면 자신의...

대안아시아 : 동아시아에 있어서 공간의 실천

에가미씨는 2011년부터 동아시아의 다양한 예술, 사회운동의 현장과 공간을 방문하여, 그 디테일을 기록해왔다. 대규모의 재개발, 불평등의 확대와 같은 문제들 속에서,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사람들과 그러한 사람들이 만든 공간으로부터 과연 어떠한 활로를 찾아낼 수 있을까? 사상, 실천, 감정이 자유로이 왕래하는 열린 일본의 미래를 에가미씨가 이야기 한다.   공간을 만든다는 행위 저는 지금 후쿠오카에 살고 있습니다만, 2011년 즈음, 대학생활을 보냈던...

미궁에서 벗어나기

수년 전 미술평론가들이 모여 ‘비평’에 대해 논의한 가장 시급한 의제는 다음과 같다. 미궁에 빠진 미술비평. 일종의 불안과 위기감이 교차하는 이 수사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비평의 위기’를 환기시키는 동시에 ‘위기’라는 유령이 여전히 비평계에서 배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직도 비평의 위기인가? 동시대 비평이 처한 상황을 살펴보면 그 답은 간단하다. 비평의 생태계는 파괴되었고, 비평가들은 고립된 채 각개전투 중이며, 텍스트는 이론 과잉에 빠졌거나 저널리즘 평론처럼 황폐하고,...

나는 테이트의 바리스타

데이빗 호크니 ◦ Christopher Isherwood and Don Bachardy ◦ 1968 중국계 미국인 지리학자 이-푸 투안(Yi-Fu Tuan)은 공간과 장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공간이 완전하게 우리에게 친밀하게 느껴지면 그것은 비로소 장소가 된다(When space feels thoroughly familiar to us, it has become place)." 장소라는 것은 우리가 정신적으로 소속되어 있기도 하고, 육체적으로 소속되어 있기도 하며,...

청춘을 달리다

오민수 ◦ -서귀포칠십리 ◦ 15x600cm ◦ 한지에 수묵 ◦ 2015 예술은 우리 삶에 어떤 의미일까? 예술가들은 예술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일까? 우리는 작품을 마주하는 매순간순간마다 수많은 질문과 생각들로 작품을 이해하고 작가를 이해하려 한다. 예술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표현욕구로 예술가는 이러한 표현 욕구를 창작활동을 통해 외부세계로 발산한다. 따라서 예술가의 창작활동은 외부에서 받은 영향을 예술가 자신의 의식 속에서 변화시켜...

글로벌리즘과 내셔널리즘의 공존

광복 이후 국민국가(nation-state)로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곧 70년을 바라본다. 그렇다면 ‘한국’의 미술이 해외에 진출한 때는 언제부터일까? 기록에 따르면 1953년 한국의 조각가 김종영(1915~1982)이 1953년 영국 데이트갤러리에서 열린 <무명 정치수를 위한 기념비> 공모전에 입선한 것이 처음이다. 그 이후 김흥수, 남관 등의 작가가 개별적으로 해외 전시에 참여했으나, 본격적으로 한국 미술을 알리기 위해 기획된 전시는 1958년 2월 미국...

세계적인 서구중심주의와 아시안 남성성, 그리고 싸이

수십년에 걸쳐 한국은 서양에서도 특히 미국 음악 시장을 뚫기 위해 노력했고, 대실패를 경험했다. 대신 한국의 대중문화는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1990년대 후반에 시작된 이 흐름은 NHK(일본 최대 공영방송사)에서 드라마 시리즈 <겨울연가>를 일본에 방영한 2002년 이후로 탄력을 받았다.[i] 한국의 대중음악과 텔레비젼 프로그램들의 광범위한 인기는 ‘한류’, 혹은 ‘코리안 웨이브’라는 용어를 얻었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포괄한 대중들은 한국 연예인들의...

문경원, 내적·해석적 상호작용하는 아틀라스

도시의 운명은 끝났다. 그야말로 폐허가 되었다. 인류의 숨은 아직 끊기지 않았는데, 그들이 디딘 땅은 더 이상 숨 쉬지 않는다. 인류는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지만 작고 너절한 이끼가 남아 있었다. 누구의 기대도 신임도 얻지 못한 그것은 조금씩 자라나 생명력을 생성하고 줄기를 뻗더니 잎을 내고 마침내 꽃까지 피웠다. 그러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그들이 잊고 있던 약속, 공원을 만들자던 그 약속은 완벽히 폐허가 된 후에야 비로소 실현되었다. 작가...

<영속적인 창작의 비결>전에 부쳐

로버트 필리우 <영속적인 창작의 비결>전(MUHKA, Museum of modern art Antwerp, 2016년 10월-2017년 1월) 리뷰 개념미술은 프랑스 문화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 발상의 시작은 언어의 표현방식인 말과 글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를 말하는 그대로 글로 적지 않는다는 사실만 봐도 구어와 문어는 각각 다른 언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어체의 프랑스어는 구어체보다 더 공식적인 표현방식으로 사용되어...

현재진행형의 기억에 관하여

노순택 ◦ 망각기계 1 나종기 ◦ 2011   우리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을 기억할 수 있을까. 이는 언뜻 듣기에는 논리적으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질문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기억은 경험에 기반하며, 그 내용이 망각되지 않고 유지되다가 추후에 일련의 재구성을 거쳐 되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경험은 개인적인 차원의 것 뿐만 아니라 구전으로 계승되거나 사회적으로 체득된 간접적인 내용 또한 포함한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년 시절의...

천지왕본풀이로 보는 제주의 신화 이야기

문화는 신화를 만들고 신화는 문화를 숨긴다 제주에는 많은 신화들이 존재한다. 이를 3가지로 분류하면 일반신화, 당신화, 조상신화로 나뉜다. 일반신화는 인간의 삶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관장하는 신들에 관한 이야기이고, 당 신화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조상신은 한 집안에서 모시던 신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신화의 섬으로 불릴 정도다보니 제주에는 마을마다 신들이 있고 집안 구석구석마다 신들이 있다. 이들은 각각의 위치와 역할에 맞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신화는 이...

무너지기 위해 존재하는 경계 그리고 관념:권순관

 <54 TABLES IN LIBRARY> 'A Practice of Behavior 2009' 시리즈 2008-2009 디지털 C-프린트 254×360cm ‘명확한 사실의 증거’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작가 권순관은 완벽하게 구성된 장편소설처럼, 탄탄한 줄거리를 지닌 사진을 시리즈로 선보인다. 미술계에 자신의 이름을 뚜렷하게 알린 2009년 작품 <행동 관습_도서관의 54개 탁자(54 TABLES IN LIBRARY)>는 가로 세로 줄을 맞춘 수십 개의...

공간, 탈 중심화, 그리고 월 30만원의 레지던시 아티스트피에 대해서

2017년 4월 28일부터 8월 4일까지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전시 <로터스 랜드>에 미술이론가 최지혜와 공동으로 작업한 결과물 <후방가드르적 착상 2015>를 출품했다. A부터 Z까지의 알파벳이 표기된 26종류의 원고지 26묶음이 단상에 펼쳐져 있고, 한편에는 싱글 채널 영상이 반복되어 돌아가는 설치 작품으로, 26종류의 원고지 각각에는 26개의 서로 다른 시나리오가 적혀있다. 각 시나리오는 광주광역시의 신생공간 ‘바림’이 쇠락하는...

하나의 청량한 미묘함 : 카라 워커와 카라 루니의 인터뷰

카라 워커의 작품들은 인종적 불평등을 대담하고 신랄하게 비판하며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그녀는 원형 파노라마를 가득 채운 실루엣 벽화부터 파격적인 영상과 드로잉, 판화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최근 <크리에이티브 타임즈>와 협업한 작품에서 그녀의 관심사가 변화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기존 작품에선 미국 남부(남북전쟁 이전의) 면화농지와 관련된 이슈에 주목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와 비슷하게 불편한 ‘설탕 무역’에 대해 다루었다. 카라 워커는 크리에이티브 타임즈의...

아티스트이자 큐레이터, 그리고 캣하우스 퓨너럴의 설립자, 데이비드 딕슨과의 인터뷰

2008년, 나는 코넬대학교 조각과 4학년이었고, 데이비드 딕슨(David Dixon) 또한 같은 전공의 석사과정에 있었다. 우리의 작업실은 미술대학 건물 뒤에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각은 인기 없는 학과였다. 같은 전공이었음에도 우리는 왕래가 없었다. 작업실을 오가며 문틈으로 서로의 작품을 힐끗힐끗 보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서로에 대해 어렴풋 알고 있다가, 각자 졸업 후 더글라스 로스의 약혼 파티에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다(더글라스는 코넬대 조각과의...

제주비엔날레와 섬 밖 사람들, ‘잘못된 만남’

“제주비엔날레 시작부터 ‘흐림’, 김준기, 김지연 등 외부 전문가 영입으로 지역 미술 업그레이드를 기대했던 제주미술인들의 염원에 상처” 평화의 잉태를 상징하는 김해곤 작가의 작품 '한 알'   부족한 시간 때문인지 제주도립미술관이 주관한 제주비엔날레에는 제주관광공사, 제주문화예술재단,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서울문화재단, 성북문화재단, (사)제주올레, (사)탐라미술인협회,...

이중사고: 호모센티멘탈리스

        1. 어떤 것이 사라지고 어떤 것이 가려지며 어떤 것이 있고 어떤 것이 보이는가? *동굴의 우상에서 그림자의 의미   어떤 상황 #1 연인 “태양처럼 빛나는 눈. 이렇게 다정한 눈빛, 영원한 순간의 지속 될 기억.”   어떤 상황 #2 일식 달이 태양을 가린다는 예보를 들었다. 태양이 쨍쨍 빛나고 있는 하늘을 본다. 마침내 달이 태양을 가리고 세상이 깜깜해진다. 태양이 있던 자리는 검붉은 원형의 형태로 검게...

변방의 울림: 전에 부쳐  

변방의 울림: <MAPPLETHORPE + 25>전에 부쳐 FOTOFOCUS AND THE CONTEMPORARY ARTS CENTER, CINCINNATI  (10/ 23 – 24, 2015)   로버트 메이플소프, 헬무트, NYC (X Portfolio 전에서), 1978. 로버트 메이플소프 재단 제공. 슬라이드 사진 속 젊은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카메라 렌즈로부터 몸을 비틀고 시트가 깔린 플랫폼을 향해 웅크리고 있다. 그는 까만 비닐 옷을 입고 있는데...

r:ead #5

신화를 가볍게 논하다   《우주론과 신화의 사고: 신화해석宇宙論與神話的思考:神話傳釋》강연- 이시쿠라 도시아키 씨의 강연   반고가 죽을 때에, 머리는 사악(중국 명산의 총칭)이 되고, 눈은 해와 달이 되고, 혈맥은 강과 바다가 되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초목이 되었다. 진한 시기의 속설에서 말하길 : 반고의 머리는 동악(산둥성의 태산)이 되고, 복부는 중악(허난성의 쑹산)이 되고, 왼팔은 남악(후난성의 헝산)이 되고, 오른팔은 북악(산시성의 항산)이 되고,...

연관성의 미학 : 수에나

Walk Together. 72x48. Acrylic, conte, oil pastel on canvas. 2017.   Gaze At. 30x20. Acrylic, conte, oil pastel on canvas. 2017.   Goat Man. 36x24. Acrylic,conte,oil pastel on canvas. 2017.   On The Bus. 40x30. Acrylic, conte, oil pastel on canvas_2017....

졸속한 세계에 대한 미학적 대응

졸속한 세계에 대한 미학적 대응   육지인의 눈에 제주비엔날레는 그 방점이 비엔날레보다는 제주에 찍힌다. 비엔날레야 이제 흔하디 흔한 국제 미술 행사에 불과하지만, 제주라는 지명이 붙으면 광주나 평창과는 질적으로 다를 비엔날레일듯한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우리 같은 육지인에게 제주는 특별하다. 주제가 관광이든 뭐든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다. 다른 비엔날레처럼 제주비엔날레도 주제가 붙고 그에 따른 다양한 부대행사와 연계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오프닝도 다른 데와 별반...

PART I : 맥락 – 서양 중심의 기준과 헐리우드의 문화적 헤게모니

    1971 년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은 남성 지배적인 미술사에 대해 고민하며 오래된 가부장제의 정당성에 당황스러울 정도의 억지스러움이 있음을 밝혀냈다. 그가 쓴 예의 중요한 논문은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었는가?"라고 묻고 있다. 노클린은 “위대한 여성 예술가가 없었기 때문에 미술사에 여성이 없다”는 식으로 추론하는 논리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권력자, 즉 문화적 헤게모니를 가진 사람들이 이익을 얻기 위해 기존의 논리를...

성실한 것에 대한 무의미한 태도

무의미한 것에 대한 성실한 태도, 캔버스에 유채, 162.2 ×130.3cm, 2017     미색의 잘게 쪼개진 수천 개의 필획이 캔버스 표면을 반복적으로 가득 메운다. 난폭하게 휘두른, 필획이라고 하기엔 차라리 카드 전표에 쓰는 싸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욱 적합할, 자신감 넘치는 동시에 무성의한 자유 곡선이 그 잔잔함 위에 빠른 속도로, 난폭하게 기입된다. 이 캔버스는 미세한 차이로서 무신경하게 갤러리 벽에 반복해서 나타난다. 한쪽 벽에서는 마치 중학생...

화려함과 심각함의 이율배반, 아댈라 리의 진지한 축제

  색색이 국화꽃이 가득 놓인 화려한 색깔로 장식된 커다란 상자. 풍성한 음식. 지붕 위의 꽃 장식. 붐비는 사람들. 자줏빛 리본과 빛나는 빨간 구슬들... 이렇게 평소 보기 힘든 이미지들이 넘치는 장면 장면은 9살 소녀의 눈엔 신나는 파티 같았다. 다만 하얀 옷을 입고 울고 있는 할아버지가 낯설고, 이모가 왜 그 좋아하는 떡을 먹지 못하는지 영문을 모를 따름이다. 대강의 묘사로 눈치 챘겠지만 소녀가 관찰한 파티는 할머니의 장례식이었다. 예쁜 상자는 다름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