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역

미역, 나의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그 곳에서는 ‘매역’이라 불리는 그 것. 밥상에 심심찮게 올라오는 미역국을 보아도 나는 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우리나라 중에서도 특히 제주의 인구대비 편의점의 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많다고 하는데, 내가 대부분의 유년시절을 보냈던 그 곳은 다 쓰러져가는 슈퍼 하나-그마저도 제대로 문을 열지 않는-뿐인 정말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의 아이들은 여름방학이면 바다에 나가 물놀이도 하고 보말도 잡으며 신나는 한 때를 보내곤 하였다....

번역위원의 노트

작년 12월, 조용하던 저와 남편의 보금자리에 송아지만한 강아지가 들어왔어요. 골든 리트리버의 털과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성격의 이 개를 우리는 파도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곧 파도의 뇌에 큰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파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안달이 난 생활을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개는 말을 하지 않아서, 파도의 사소한 문제부터 중대한 결정까지 모두 우리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언제나 파도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고 믿지만, 정작...

흰 머리카락, 테이트 모던, 그리고 잭 캐루악 같은 것들

날 유심히 봐주는 지인들의 목격에서 시작됐다. “흰 머리카락이야, 뽑아 줄까?” 그 다음엔 공용화장실의 밝은 조명 아래 반사된 내 모습을 보고 내 눈에도 한 두 가닥 흰 머리카락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흠, 뽑아야 하나’ 싶어 네 손가락 사이에 머리카락을 넣어 천천히 촤르르 쏟아내려 봤다. 조금 과장해서 흰 머리카락이라고 다 뽑아내다간 조만간 가발을 사야 할 지경이었다. 보그 편집장만큼 세련된 패션 감각으로 유명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흰 머리에 어울리는 경력과 나이를 갖춘...

누구나를 위한, 그러나 아무나는 아닌

누구나에게 주어졌으나, 아무나에게는 아닌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는 내가 두 달 동안 야외전시 지킴이를 하면서 수 없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지킴이로써 관리해야 했던 작품은 대다수는 관람객이 거리를 유지하면서 봐야 했고, 한 두 개 정도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었는데, 그 중 스스로 생각할 거리를 준 작품은 김 준 작가의 ‘소원당; 소원을 빌다’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소원지에 소원을 써서 다양한 소리가 들리는 서랍 안에 본인의 소원을 넣으며 관람객이 같이 작품을...

내가 산 것들_Prologue

“무슨 일 하세요?” 일을 하고 나서 새로운 사람들을 예전보다는 많이 만나게 되었고, 그리하여 요즘 부쩍 많이 듣게 되는 질문들 중 하나이다. 그리고 항상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상대가 그런 질문을 해 오는 경우에 으레 나는 “돈 되는 일은 다 합니다.” 라는 대답으로 넘기기가 일쑤인데, 앞으로 시작될 나의 이야기는 내가 산 것들, 내가 산 고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이 여러 가지 의미로 다시 주목을 받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