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해를 가리면 빛나던 돌은 어둠 속에서 꿈틀거린다

  검은 돌이 있다. 불어오는 바람에 마른 표면을 드러낸 검은 돌은 흐르는 시간을 멈추고, 주위의 공기를 빨아들일 것 같은 깊은 색을 지녔다. 그래서인지 이것은 수면 위에서 반사되어 공기 중으로 가볍게 흩어지는 빛과 달리 제법 묵직하게 화면을 누른다. 그리고 화면 곳곳에서 서로 포개지거나 무더기로 뭉쳐 있다가 다시 물이 차오르는 시간을 맞이하면 은빛 물결 속으로 조용히 모습을 감춘다.   조기섭은 제주의 풍광을 소재로 대상에 대한 심리와 사유의 방식, 그리고 그에 대한 독특한...

김범균 작가론

우리가 유독 시각적인 것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성급한 일반화인가. 반기를 들 수 있는 자는 누구이며, 그 증거는 무엇인가.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 볼 때, 지금 우리는 가장 덜 변증법적이며 가장 많이 즉응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이미지가 그것을 해냈다. 사색과 상상력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이미지는 자신의 영토를 확장했다. 긴 논쟁과 장문의 정의는 단 한 장의 사진, 단 한 편의 영상에 진실규명의 권한을 위임했다. “적게 볼수록, 더 많이 상상하게 될...

바다밭을 일구는 제주의 잠녀들

화산섬과 잠녀 제주도는 한반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화산섬이다. 약 백이십만 년 전, 용암 분출과 퇴적작용을 반복하며 형성되었다. 섬 한가운데에 있는 해발 1,950미터의 한라산(漢拏山)은 먼 곳을 오가는 항해자들의 이정표 역할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이곳 섬사람들에게는 문화를 태동시킨 모태였다. 동서로 긴 타원형을 이루고 있는 섬의 끝자락은 태평양으로 이어진다. 멀리 적도에서 올라오는 커다란 쿠로시오 해류(黑潮海流)는 난류성 어족(魚族)을 이끌어 북반구로 올라오다 제주에...

비움과 채움의 언어

  제주시 화북 나지막한 포구, 돌담으로 만들어진 창고가 작가의 작업실이다. 바다와 잘 어울리는 돌담 창고가 예쁘다. 청년작가의 작업실 치고는 세월의 흔적과 작업 도구들의 손때가 물씬 풍기는 공간이다. 모름지기 작가에게 작업실은 생산의 터이자 사유의 공간인지라 각기 색다른 향기를 품고 있다. 단순히 생산만 하는 작업실의 냄새와는 다른 깊은 향기가 나는 건 어떤 연유에서 일까. 작업 도구들과 전통적인 작업 방식의 잔여물들 때문일까. 모처럼 땀 냄새나는 젊은 조각가의...

강태환의 틈_비워져야 사는 어떤 공간에 대한 이야기

강태환의 틈_비워져야 사는 어떤 공간에 대한 이야기   “돌을 자연성 그대로 한없이 인간에게 다가오게 하는 일. 철판을 인공성을 띤 채 한없이 자연에 다가가게 하는 일. 서로의 다가감은 제3의 그 무엇에, 하나로 맺어진다. 그리고 겹쳐진 그 어긋난 부분이 세계의 통풍을 가능하게 한다.” – 이우환   틈이란 긍정을 의미하던가 부정을 말하던가. 빈틈없다는 표현은 칭찬이던가 욕이던가. 빈틈이 많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었나 나쁜 사람이었나. 그나저나 틈이라는 건 비어있는 것인데,...

상상이 빚는 차가운 손_천재가 사는 실패의 시간

상상이 빚는 차가운 손_천재가 사는 실패의 시간 반짝이는 임기응변과 재치, 시대를 읽는 눈이 현대미술가를 만든다. 타협을 모르는 집요함과 인내심에 시간 들여 익힌 기함할 테크닉이 결합돼 장인을 만든다. 이호철은 그래서 동시대 미술가보다는 장인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 있다. 이제 첫 개인전을 치르는, 앞날 유망한 젊은 작가에게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 아니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라는 존재를 과감히 떼어내고 작품만 보자. 정성 들인 시간이 함축된, 잘 다듬어진 기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