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 작가의 작업 의도와 주제를 대면했을 때 느껴지는 개인적인 친밀감은 관음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람들의 각기 다른 삶과 개인적인 아픔에도 대입할 수 있다. 마치 좋은 이별 노래가 꼭 이별이 아닌 삶의 힘든 시기나, 아닌 그 어느 때든 삶에 대한 열렬한 찬가처럼 들리는 것처럼. 이는 개인의 사생활을 더 넓은 관중에게 공유하는 솔직함과 작가의 넓은 아량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하다. 작가는 단순히 자신의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풀어나가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 자체를 신뢰를 보여주는, 일종의 교환 토큰으로 사용한다. 솔직한 자기표현은 솔직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그렇지만 작품의 흐름은 관객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자가-치료 방식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김수정 작가의 모든 작업에는 이러한 제의적인 면이 등장하고 있다. 단체 의식: 매장과 애도, 가족의 통탄, 땅을 파고 묻으면서 닿는 손, 모든 애도가 하나가 된다. 비밀스러운 의식, 촛대와 같은 오브제, 선명한 기호들은 독단적으로 보이고, 왁스를 칠하는 것, 시간을 세는 것은 마치 마술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명상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들은 마치 (문자 그대로인, 그리고 심리학적인) 투사의 마법에 쓰레기 봉지처럼 불분명의 공기에 흠뻑 젖어 둥둥 뜬 채로 남겨진 것같이 느껴진다. “수술실”의 느낌처럼 각 작품을 보았을 때, 그 심플함과 작가의 영리한 실험에 관객은 놀라고 만다. 마치 당신이 적었으면 좋았을 법한 심플한 문장처럼 완벽하게 의미가 통한다. 관객은 반복되는 주제와 질문에 작가의 작품에서 확실성을 발견한다. 작가는 적히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언어의 형태로 무형의 혼잡한 감정을 표현해내고 그것이 바로 김수정 작가 작품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무형의 것, 혹은 생성되고 있는 것에 대한 전념. 김수정 작가는 ‘유동적’임을 수용하고 확실한 정의를 내리는 것에서부터 탈피한다.

 

필자 : 프랑수아 피사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