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한국을 보는 서구 언론의 시각과 미국의 통속적인 견해

세스 마틴: 당신은 2차 세계대전의 여파 속에서 한국과 일본에서 선교사의 자녀로 자랐고, 또 전후의 황폐화와 재건 기간 동안에 혼돈과 빈곤이 만연했던 시기에 그 두 나라를 보았다. 당신의 뿌리와, 무엇이 당신을 탐사 보도 기자로 만들었는지 얘기해줄 수 있는가? 또 구체적으로 어떻게 광주의 이야기에 관여하게 되었는가?

팀 셔록: 그 여정은 내가 1959년~1961년에 서울에서 살았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1960년 4월 19일, 이승만에 저항해 사람들이 일으킨 혁명을 목격했을 때 나는 9살 즈음이었다. 그 일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사람들이 봉기해서 인기 없는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 기억은 항상 내 안에 있었다. 십대와 대학생 시절에는 일본과 미국에 있었고, 베트남전 반대 운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그 시절에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에 대해 제법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갈 무렵 한국에서는 또 다른 전쟁공포라는 것이 발생했는데, 베트남인들이 승리하고 미국군을 추방시킨 이후, 워싱턴의 포드 행정부가 날조해 만든 전쟁 공포가 그것이었다. 미국 관리들은 김일성이 남한을 침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공포는 약 일주일 후에 끝났지만, 그 사건은 내가 어렸을 적부터 오랜 기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했다. 나는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대학원에서 냉전 기간 즉, 내가 한국과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해왔던 일들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대학원에서는 한국, 특별히 남한의 산업화와 노동자들의 역할, 노조가 시도했던 일들에 중점을 두고 공부했다. 나는 그 주제를 따라갔고, 1979~1980년의 민주주의의 위기에 노동자들의 시위가 불꽃을 일으키며 터뜨렸을 때,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신문에서 늘 읽고 있었다. 그때 대통령이 암살당했고 측근이었던 한 장군이 일으킨 쿠데타가 있었으며, 그 시기의 사람들, 특히 노동자와 학생들이 이에 대항해 들고 일어났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다니던 학교에서 주시하고 있었고, 아주 깊고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뉴스를 통해 거의 매일 한국 소식을 접수했다. 광주사태가 발생했을 때, 나는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많은 직접적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1981년에 기자로 한국에 오기 시작했고, 80년대 초반에서 85년까지 여러 번 이곳에 왔다. 그리고 노동 운동가들을 포함하여 민주주의 운동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초기에 접촉했던 대부분 사람들은 나의 부모님을 통해 알고 있었던 기독교 그룹을 통해 이루어졌다.

세스 마틴: 당신의 부모님은 한국과 일본에서 선교사였다. 당신이 만난 대부분의 급진주의자들은 종교를 가진 자들이었는가?

팀 셔록: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고, 교회는 급진 단체의 조직자들을 만날 수 있는 하나의 길이었다. 소수의 사람들이 기독교 운동가들이었고 한국 교회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 문을 통해 연결되는 하나의 큰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김대중을 인터뷰하기도 했고, 또 유명하거나 유명하지 않은 많은 노동조합원, 환경론자, 민주주의 활동가들을 만났다. 나는 나머지 민중들이 어떻게 이곳에서 살아왔는가, 민주주의 운동에서 정말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즉 풀뿌리 운동이 무엇이었는가를 배우게 되었다. 또 ‘그것이 어떻게 발전했는가’와, ‘한국에서의 민주적 투쟁을 미국에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미국의 노동, 평화 단체와 그와 동일한 한국의 단체들이 서로 소통을 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기자로서 내가 한 일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세스 마틴: 당신이 광주에서 기자 일을 시작했을 때, 한국에 관한 서구 언론의 분위기는 어떠했는가?

팀 셔록: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그때는 기본적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제로였다. 나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마더존스 외 다른 출판물들처럼 산발적으로 다양한 논문을 썼지만, 그 당시는 내 글을 출판하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당신이 김정은 미친놈이라는 글을 쓴다면 몰라도,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에서는 한국에 관한 관심이 거의 없다. ‘김정은’에만 흥미가 있지, 한국, 이 나라, 민주주의의 진보, 정말로 이곳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는 전혀 흥미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은 마치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나라인 것과 같다. 한국은 거의 미국의 부속물과도 같다. 수치스럽게도, 미국의 미디어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전혀 관심이 없다.

세스 마틴: 서구 언론의 한국에 관한 보도들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보자. 광주 항쟁의 의미와 촛불집회, 탄핵과 신임 대통령 등 오늘날의 한국의 정치적 기후를 논하기에 앞서, 2015년 겨울로 되돌아가서 한국과 일본의 이른바 ‘위안부 여성’ 합의에 대한 서양 언론의 취재 견본을 살펴보자. 당신도 기억하겠지만, 이 ‘합의’는 한국에서는 폭넓게 비판과 항의를 받았지만, 서구 언론에서는 주로 대단한 찬사를 받았다.

예를 들어, USA Today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이 “그들의 차이”를 해결하고, “점점 더 독단적인 중국과 변덕스럽고 핵으로 무장한 북한에 맞서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강조해왔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기사에서, 호놀룰루에 본부가 있는 외교정책 연구소 Pacific Forum CSIS 책임자인 Brad Glosserman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이(거래)로 인해 장애물이 제거되었고 중요한 두 동맹국이 함께 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미국에는 매우 유익하다.”(USA Today 2015년 12월 28일)

블룸버그 통신에 그 합의 (2015년 12월 28일)에 대해 기고한 샘킴Sam Kim과 마이코 타카하시Maiko Takahashi는 “미국의 가장 큰 동맹국인 두 나라 사이의 최대 긴장의 근원을 해결하면, 두 나라 지도자들에게 내년 총선을 준비할 때 정치적 활기(반격)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간 쇠퇴하였던 무역에도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떠오르는 중국과 핵무장한 북한을 상대하는데도, 한국과 일본에 75,000명 이상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는 미국으로서, 양국의 관계 개선은 환영할 일이다”라고 언명했다.

또 다른 USA Today (2015년 12월 28일) 기사에서 Kirk Spitzer는 “한국과 일본이 세계 제2차 대전의 성노예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합의에 도달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국의 외무부 장관 윤병세는 이번 합의로 이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팀 셔록: 그 모든 인용문은 한국과 일본에 대한 제국주의와 식민지적 사고방식을 드러낸다. 그들은 세 나라 (한국, 일본, 미국) 사이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사실상 없다. 일본식민지의 역할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의 시기 동안 미국이 일본의 정치적 시스템에서 가장 우파적 요소를 지지해왔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도 없다. 현재 아베 신조가 이끌고 있는 자민당에서 그의 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는 미국에 전쟁을 선포하고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 제국에서 핵심적 인물이었다. 또한 서구 언론은 미국이 이와 같은 3자 동맹을 수십 년 동안 추진해왔으며, 한국인들이 여전히 일본인들에게 지니고 있는 적대감, 그 이유 있는 불만이 미국에는 최대 장애물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사실 파악을 전혀 못하는 듯하다.

세스 마틴: 적지 않은 생존자들, 할머니들께서 아직 살아계신다.

팀 셔록: 생존자들이 아직 살아계신다. 그리고 일본은 결코 공식적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 또한 일본 정치인들은 전쟁 범죄자들을 포함하여 전쟁에서 사망한 이들이 묻혀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계속해서 참배하고 있다. 그 모든 행위는 일본인들이 전쟁 중에 한국인들을 성노예로 쓴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번 새로운 ‘합의’는 한국 국민의 의견 없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합의는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이제 진보적인 대통령이 생겼고, 사람들은 보수 정권을 제거하기 위해 일어났으며, 재협상을 원하는 정부를 얻었다.

세스 마틴: 그렇다. 그러나 한국에 관해 서구의 주요 미디어에서 전하는 서구적 서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까? 2015년에 그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하는 국제적 압력이 있었고 그해 겨울에 위와 같은 보도들이 나왔다.

최근의 촛불집회와 박근혜 재판에 대해 얘기해보자. 서구 세계가 한국의 이 거대하고 격렬한 변화에서 읽은 것은 무엇인가? Euny Hong이 CNN에 쓴 한 사설을 예로 들어보자. 제목은 “당혹스럽다는 이유로 탄핵당한 대통령”(The President Who Got Impeached for Being Embarrassing)”

http://edition.cnn.com/2017/03/12/opinions/south-korea-america-different-democracies-opinion-hong/index.html

지난 3월에 나는 온라인에 돌아다니고 있던 이 글을 읽었다. 이 글은 한국인과 그들의 문화에 대해 얘기하지만,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이끌어가지 못한다는 이른바 ‘한국인의 불능’이라는 고정관념을 지닌 사람들을 위해 쓰였으며,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었다.

팀 셔록: 말도 안 되는 글이다.

세스 마틴: “위안부” 합의 이후와 촛불집회로 많은 것이 변했다. 무엇이 촛불집회를 나아가게 했는지 몇 가지 얘기해줄 수 있는가? 예를 들면 한 농민이 시위 도중에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의식을 잃어 식물인간 상태에서 돌아가신 사건도 있었다.

팀 셔록: 백남기 농민.

세스 마틴:그렇다. 역사 교과서 이슈도 그렇고, “위안부” 이슈에 대해서도 여전히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사드 배치 문제도 그러하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상황들과, 왜 문재인은 현대통령이고 박근혜는 감옥에 있는지 생각을 나눠줄 수 있는가? “한국인들이 당혹스러워했다”라는 그 사설보다 알맞은 그 무엇 말이다.

팀 셔록: 무엇보다도, 박근혜는 단순히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한 것이 아니라, 범죄자였다. 당혹스럽거나 창피한 것이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는 충격 자체였다.

세스 마틴: 동의한다. CNN의 한 기사에서는 한국인들의 분노와 거대한 시위에 관해 그 한 가지 이유는 한국인들이 미성숙한 민주주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쓰고 있다.

팀 셔록: CNN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미성숙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정말이지 무엇이 진짜 민주주의인지 아무 생각이 없다. 또 그들은 한국인의 민주주의와 어떻게 그들이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고 그 싸움을 이어왔는지는 중히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박근혜가 단지 당혹스럽게 한 대통령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한 것이다. 그녀는 범죄자다. 그녀는 형사 고발을 당하고 있다. 그녀는 대기업과 기업의 엘리트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 그것은 단지 창피한 수준이 아니라, 범죄이다. 그것이 그녀가 자신의 직무실에서 추방당한 알맞은 이유인 것이다. 그리고 이에 관한 그러한 서구의 보도들은 다시금 제국 식민지 정신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사람들(미국 미디어에서)은 한국을 독립된 한 나라로서 보지도 않는다. 미국 정부가 그렇고 많은 미국 언론매체가 그렇다. 그들은 마치 미국에 적대적인 북한이 위치해 있는 어떤 한 나라에서 미국은 일종의 무고한 방관자인 것처럼 한국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다. 어떤 역사적인 이해도 없고, 어떤 역사적인 분석도 없다. 단순한 선전일 뿐이며, 기본적으로 미국 정부가 추진하고 그것이 뉴스로 만들어진다.

세스 마틴: 이는 오랜 기간 한 지역에 머무는 특파원이자 한국에 대해 많은 글을 썼던 영국 작가, 마이클 브린Michael Breen을 떠오르게 한다. 오래전에 그는 ‘한국인을 말한다(The Koreans: Who They Are, What They Want, Where Their Future Lies)’라는 유명한 책을 썼다. 최근에 ‘새로운 한국인(The New Koreans)’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작년 12월, 탄핵을 향한 첫 번째 성공적인 단계에 이어, 사람들의 시위가 주말마다 강력해져 가고 있을 때 (시위 전체에 걸쳐 전 연령대에서 비폭력적 양상으로), 마이클 브린은 “한국의 민주주의에서 사람들은 분노한 신이다(In Korean Democracy, The People Are A Wrathful God)”라는 제목의 외교 정책 관련 글을 썼다.

(http://foreignpolicy.com/2016/12/19/in-korean-democracy-the-people-are-a-wrathful-god/)

이 글에서 그는 한국 대중의 여론을 ‘짐승’으로 언급하고,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만일 한국의 민주주의가 미국처럼 법에 기초한 것이었다면, 그 과정은 워터게이트 수사의 2년이라는 긴 시간과 같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녀(박근혜)의 임기가 끝나는 2018년 2월까지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힘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국에서 대중의 감정이 일정한 한계를 넘어선다고 할 때, 그것은 의사결정과 이미 확립된 법을 파괴할 수 있는 어떤 강력한 짐승으로써 왜곡된다. 한국인들은 그것을 ‘대중적 정서’라고 하지만, 영어에서는 한국어 표현을 영어식으로 길들이므로 그 속의 근본적인 현상은 잘 전달하지 못한다. 보다 정확한 표현은 ‘대중의 감정’ 또는 ‘군중의 열정’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한국인의 대중적 정서는 부정적으로 전달된다.

팀 셔록: 하, 그 양반(마이클 브린)은 기자가 아니라, 그냥 홍보하는 사람이다. 자신은 한국에 대한 엄청난 전문가라고 주장하지만, 그가 하는 일은 홍보 활동이다.

세스 마틴: 이는 중요한 무엇인가와 연결된다. Euny Hong, 마이클 브린 같은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견해를 글로 쓰고, 한국에 대해 사려 깊고 중요한 견해로서 인정받는다. 또 자신들의 글을 폭넓게 외부세계에 공유할 수 있다. Euny Hong은 K-Pop의 부상에 대한 책을 썼고, 이제는 CNN과 같은 주요 뉴스에서 한국에 대해 가치 있는 견해를 가진 자로 대우받는다. 마이클 브린 역시 한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책을 썼고, Foreign Policy와 같은 주요 신문사와 출판사에서 글을 요청받는다. 그 둘 다 학자는 아니다. 그들의 글은 한국에서도 다른 나라에서도 아주 폭넓게 읽히고 있다. 무엇이 서구 언론에 그들의 글이 합법적인 출처로 여겨지게 하는 것인가? 서구 세계가 받아들이는 한국적 서사와 이곳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외부적 이해의 수준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팀 셔록: 사람들에게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의 한국전쟁의 역사(The History of The Korean War)부터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왜 이 나라가 분단되었는지, 어떻게 분단되었는지, 한국 전쟁이 무엇이었는지, 그 이래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초기 한국 정부에서 일본 협력자들이 맡은 역할과 그것이 어떻게 오늘날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최근까지 우리가 지켜봤던 그 시스템의 잔재들을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이 만일 그러한 대중문화만 읽으려한다면, 진짜 한국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 특히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 말이다. 쓰레기 같은 글을 읽지 말고 진짜 이곳 사람들과 이야기해야 한다. 그들은 거리에 나가서 실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직접 겪어내고 살아냈던 정말 놀라운 이야기를 가진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서울뿐만 아니라 광주나 다른 도시, 한국의 많은 지역에서 말이다. 그냥 광주에 가서 수십 년의 억압 속에 살았고, 시민 저항을 기억하며, 그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을 만나라. 이곳 사람들은 억압에 맞서 싸우고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건설했다는 아주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그것이 서구 사람들이 이 나라에 대해 읽어야만 하는 부분이다. 그들은 이곳 사람들을 바깥 길거리에서 만나 이야기해야 한다. 한국어를 배우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

2부: “잊지 못할 기억”, “불타는 사람들”, “프로파간다는 효과가 있다”

세스 마틴: 2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당신과 나는 옛날 미국 포크송의 전체 맥락을 훑는 즉흥연주를 함께 해보았다. (옮긴이: 세스 마틴은 민중 음악가이며, 팀 셔록은 포크뮤직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 한국에 대한 탐사보도와 민주주의 운동 외에 당신은 음악가이기도 한데, 포크 뮤직의 역사는 당신이 열정을 쏟는 일 중 하나이다. 이번 대화에 그 주제를 가져와 보자. 미국 포크의 상징인 유타 필립스Utah Phillips는 ‘잊지 못할 기억(Long Memory)’은 미국에서 가장 급진적인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 참전 용사였으며, 후에는 잘 알려진 단체의 조직가, 무정부주의자, 노래하며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당신은 개인적으로 그를 알고 지냈다. 유타 필립스는 항상 ‘잊지 못할 기억’은 우리가 놓아버릴 수 없는 그 어떤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노래 안에서 역사를 지켜 갔고, 거의 모든 곳에서 한국에 대해 얘기했다. 미국에서의 ‘잊지 못할 기억’과 비교하여 한국 혹은 일본에서의 잊지 못할 기억에 대해 얘기해줄 수 있는가? 한국 역사와 현재 한국, 미국, 일본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이 개념은 어떤 의미일까?

팀 셔록: 한국 또는 일본에는 미국에는 없는 오랜 역사가 있다. 비교적 가까운 옛날로 이어지는 단적인 예로, 일본 총리의 할아버지는 만주에서 김정은의 할아버지인 김일성과 싸웠던 전쟁 범죄자였다. 이런 역사를 포함하여 이와 같은 모든 역사의 유산들은 미국 언론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미국인들과 언론계는 한국에 관해 미국을 무고한 방관자로 여기는 듯하다. 역사의 측면에서, 한국 전쟁 중에 미국이 북한에 얼마나 많은 폭격을 가했는지에 대한 ‘잊지 못할 기억’은 없다. 또는 그것을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대한 기억도 없다. 미국 주류 언론에서는 1948년의 제주 4.3이나, 내가 아주 많이 다뤘던 광주항쟁(미국 정부가 독재자에 대항해 싸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독재자 편을 든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조금 다뤄졌다.

세스 마틴: 미국이 그것을 결정한 것인가? (광주항쟁과 관련하여)

팀 셔록: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시인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기 기억과 같다. 그들이 기억하는 것은 지난주의 북한의 미사일 테스트와 북한 정부와 김정은은 미쳤다는 것, 예측 불가능한 정권이라는 것, 그것 뿐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북한 정부를 예측할 수 있는 데도 말이다. 북한이 무엇을 원하며, 왜 핵무기를 가지려고 하는지는 아주 분명한 일이다. 아무도 파헤쳐보지 않은 북한과 미국 사이의 갈등에 대한 역사가 있다. 미국인의 사고방식은 대부분의 미국 언론에 의해 거의 전적으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90년에 있었던 북한과 미국의 합의를 생각해보라. 그들이 합의한 틀 내에서 북한은 그들의 핵 계획을 8년 동안 동결시켰음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은 항상 북한이 그 합의를 깼다고 말하지만 실은 미국이 깬 것이다.

세스 마틴: 언제?

팀 셔록: 미국 의회가 개입했을 때, 90년대 후반이다. 미국은 어떤 역사도 인정하지 않고, 지난 10년간의 역사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마치 지난 몇 주간 이런 모든 위기가 발생한 것처럼 행동한다.

세스 마틴: 현재의 틀에서, 확대되고 있는 한미군사훈련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팀 셔록: 미국은 오랫동안 그 일을 해왔다. 지금 중요한 것은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참수”공격을 미국이 연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훈련 중 마지막에 그들은 오사마 빈라덴을 죽인 팀과 같은 팀인 해군 특수작전부대 ‘Seal Team 6’를 투입시켰다. 그들은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고, 그 지도부를 죽이고, 핵 시설에 첫 공습을 가하기 위한 예행연습과 모의실험을 하고 있다. 그래서 당연히 북한 사람들이 이것을 보았을 때는 그들의 두려움도 단계적으로 상승하는 것이다. 그들은 핵잠수함 항모전대를 본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한낱 게임이 아니라 직접적 위협으로서 간주하는 것이다.

세스 마틴: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이 전쟁게임에서 벗어날 길이 있을까?

팀 셔록: 출구가 있다고 믿는다. 현 한국 정부도 그렇게 믿고 있다고 생각한다. 출구는 북한과의 대화와 상호작용을 통해서 찾을 수 있다. 북한 정부뿐만 아니라 그곳 사람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북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려면, 외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해야 한다. 순전히 군대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만나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일방적으로 작동되는 게 아니다. 트럼프 이전에 8년 동안 미국에서는 기본적으로 북한은 어떻게든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결국에 자체의 타성에 의해 붕괴되고 없어질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붕괴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아주 강력한 체제다. 비록 독재 체제일지라도 대중의 지지를 여전히 받고 있고, 언젠가 조만간 붕괴되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지침들은 어리석은 것이며, 현재 겪고 있는 실패를 치료하지 못하는 잘못된 처방전을 가진 셈이다.

세스 마틴: 문재인은 통일은 단순히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의 생애 동안에 이루어 질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 같다. 북한에서 온 피난민의 부모를 둔 문재인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께 고향을 다시 보여드리는 게 그의 소원 중 하나라고 기자단에 말했다. 그리고 그는 미래에 통일된 한국에서 언젠가는 DMZ의 북쪽에서 그의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자원봉사를 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자, 자신의 선거유세기간에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북한에서 살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후보가 있고, 갑자기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 한국에서의 사회정의 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진 한 기자로서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문재인은 현실적인가? 아니면 공상일 뿐인가?

팀 셔록: 그가 말한 것은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세스 마틴: 통일이 가능할까?

팀 셔록: 글쎄, 나는 그것의 어떤 형태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통일은 사람들의 꿈이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개념들은 각기 다른 것 같다. 나는 수년 전에 김대중과 김일성이 북한에서 공식화했던 아이디어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일종의 연합이었다. 물론 그것은 군사적 긴장에서 단계적 축소를 요하는 시나리오지만, 이들(남북)에게는 공동으로 함께 시작한 일종의 연합 같은 것이 있고, 이 방향으로 향하도록 하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예를 들면, 이들은 한때 단일 올림픽팀을 만들기도 했다. 그것은 단순한 사건 같은 게 아니다. 그 아이디어는 남북이 한 나라로서 행동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천천히 경제와 사회적 유대를 구축함으로써 일종의 연합을 만들 수 있으며, 일정 시기 동안에 통합으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 생각에 미국도 물론 남북이 언젠가는 통일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미국의 통제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파들에 대한 미국의 통제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결국에는 그 연합에 대한 아이디어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 출발점으로, 문재인이 이야기하고 있는 의료팀, 문화와 스포츠 교류와 같은 일종의 경제적 교류를 더 많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스 마틴: 통일의 길은 군사적 방식이 아니라 경제와 문화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는 것인가?

팀 셔록: 절대적으로 그렇다.

세스 마틴: 남한에 미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평화적인 통일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팀 셔록: 그 질문은 답하기가 참 어렵다. 하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한국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평화협정이, 아직은 휴전 상태이지만 어느 시점에는 최종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교섭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몇 년 전 북한군 참모총장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얘기한 것이 미군 병력의 한반도 철수였다. 이 모든 것들은 협상의 주제이다. 중국과의 협상 주제이기도 하며, 남한과 북한과 미국의 협상 주제이다. 나는 미국이 북한의 핵공격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에 대한 공격 계획을 공개적으로 하는 이 패턴을 멈추고, 항상 북한을 적으로 만드는 일을 멈춰야 한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금 다른 사고방식이 필요할 것이다.

세스 마틴: 미국에서 한국전쟁을 말하자면, 미국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는 항상 단 몇 줄밖에 안 나와 있고, 종종 ‘잊혀진  전쟁’으로 일컬어지곤 한다.

팀 셔록: 그렇다.

세스 마틴: 지금 막 우리는 역사에 관한 투쟁과 미국에서 역사를 보호한다는 아이러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이와 같은 논쟁의 대부분은, 남부군의 아이콘(옮긴이: 미국남북전쟁 당시의 남부군 장군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동상들)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서 역사와 문화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미국 극우주의자들이 이어가고 있다.

팀 셔록: 미국에서는 그렇다.

세스 마틴: 미국에서는 여전히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것 같다. 대부분 미국인들에게 왜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인가?

팀 셔록: 그건 미국이 졌기 때문이다. 그 전쟁은 무승부였고, 누구도 이기지 않았다. 몇 년 전에 오바마는 한국전쟁을 미국의 큰 승리라고 일컬은 적이 있었는데, 한국전을 언급한 대통령은 그가 처음이었다. 이전에는 그렇게라도 말한 대통령이 없었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했다는 생각은 미국 우익들의 사고방식이었다. 그 전쟁은 무승부였고, 아무도 이기지 않았으며, 한국 사람들도 졌고, 국경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미국은 잊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만 명의 미국 병사가 그 전쟁에서 죽었다. 정말 끔찍하고 또 끔찍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300~500만의 한국인들이 그 전쟁에서 죽었고, 그 중 거의 300만이 미국의 폭격으로 북한에서 죽었다. 미국인들에게는 한국에 관한 영광스러운 이야기란 없다. 그 끔찍한 미국의 폭력에 대한 역사는 미국 언론에서는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아주 드물게, 때때로, 누군가는 그것을 반영하는 무언가를 쓰긴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학교에서는 결코 배우지 못할 것이다. 한 예를 들어,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 기념관에 가보면, 당신이 보게 될 것은 기본적으로 미군 한 무리가 푸른 잔디 위를 거닐고 있는 이미지밖에 없다. 내가 거기서 그 이미지를 보았을 때, 나는 저 멀리 초가지붕이 불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군인들이 그 안으로 화염방사기를 쏘고 있고, 사람들은 몸에 불이 붙은 채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농민들이었다. 알다시피 그게 전쟁이 하는 일이다. 전쟁의 흉포와 공포는 ‘잊혀진 전쟁’과 같은 그런 아이디어에 숨겨져 있다. 그러나 나는 주로 그 전쟁이 교착상태였기 때문에 미국이 잊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미국은 자신들이 공산주의를 물리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북한을 넘어가 침략했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국해병대의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승리란 없었다. 미국이 결정적으로 승리했다고 할 수 있는 전쟁은 세계 제2차 대전밖에 없다.

세스 마틴: 그렇다. 세계 제2차 대전에서의 미국의 희생과 용기는 우리들의 집단적 서사를 지배하고 있다. 이제 트럼프가 취임했는데,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접근과 정책이 지난 행정부와는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하는가?

팀 셔록: 거의 똑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난 수개월 동안 군사력의 증강으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또 선제공격이라는 부정확한 이야기나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은 북한인들을 크게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그에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없었던 식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지난 정부든 지금 정부든 기본적 정책은 같다. 그들은 여전히 북한과 직접 이야기하지 않는다.

세스 마틴: 그게 내가 궁금한 부분이었다. 북한에 대한 현 정책은 공화당과 민주당 어느 쪽이 더 많은가?

팀 셔록: 두 정당에서는 동일한 국가 안보 정책이다. 나는 작년 미대선 때 힐러리 클린턴의 대북 정책에 관한 글을 하나 썼다. 기본적으로 그녀의 고문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주장하고 있었고, 그녀 역시 지금 트럼프가 하고 있는 정책과 유사한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힐러리 클린턴이 이겼더라도 상황은 전혀 다르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사실,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늘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는 변해야만 하는 미국 정책의 본질이다. 워싱턴에서는 한참 과거로 돌아가 진정으로 한국전쟁에 대해, 그리고 현 위기의 근원을 해결하겠다는 움직임이 있어야만 한다. 우리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이 위기와 긴장은 매월 매해 계속될 것이다.

세스 마틴: 잠시 미국 언론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서, 최근에 미국의 한 여론 조사(두 가지 질문)가 나왔는데, 미국인들에게 “미국은 북한에 폭격을 하거나 거칠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게 질문이었다. (옮긴이: 두 번째 질문은 “세계 지도에서 북한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팀 셔록: 대부분의 미국인은 북한을 찾지 못했다.

세스 마틴: 그렇다. 우리는 충격적인 통계가 일렬로 나열되는 것을 보았다. 일반적으로 지도에서 북한을 찾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북한을 공격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팀 셔록: 맞다. 북한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들은 공격을 원치 않았다.

세스 마틴: 그리고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만, 여전히 충격적인 부분은 그 여론조사에서 거의 초당적 패턴이 나왔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공화당, 어느 당을 지지하는 지와 상관없이, 일반적으로 지도에서 북한을 못 찾았을 때는 어김없이 북한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팀 셔록: 그렇다. 안타까운 일이다. 미국 정부의 프로파간다가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3부 “연속체”, “체로키 파일”, “나라의 주인”

세스 마틴: 옛날 한국에서 있었던 급진적인 운동들과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들 사이의 연결점에 대해 당신의 생각을 조금만 더 듣고 싶다. 예를 들어, 동학농민운동, 이것은 아까 우리가 얘기했던 ‘잊지 못할 기억’에서도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작년에 광주를 방문했을 때, 5.18기념관 중 한 곳에서 학생들이 학생 신문을 만드는 모습이 동상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팀 셔록: 맞다. 그게 기록보관소에 있다.

세스 마틴: 이는 후에 ‘녹두장군’ 또는 ‘녹두장군 전봉준’으로 이름 붙여졌다.

팀 셔록: 아, 맞다. 그렇다!

세스 마틴: 그러니까 광주항쟁에서 학생들이 만든 신문의 이름조차, 유명하고 훨씬 오래된 운동이었던 동학농민운동의 직접적인 언급인 것이다. 그리고 ‘잊지 못할 기억’에 대한 또 다른 예가 있다. 지난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난영과 나는 광화문 촛불시위에 참여했는데, 한번은 전국농민회총연맹의 리더가 무대에 올랐고, 그는 투쟁의 계보에서 직접적으로 이어져 있는 동학농민운동의 역사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자신들의 요구사항의 목록을 큰 소리로 읊는 연설을 했다.(옮긴이: 동학농민운동의 폐정개혁안 12개조와 동일한 형식으로) 그는 동학농민운동과 이 역사적 순간인 촛불집회를 연결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유명한 광주항쟁 관련 노래가 광화문에서 자주 불리고 있었다.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은 과거의 투쟁과 촛불집회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는 것 같았다. 이는 정의를 향한 세대를 아우르는 한국인들의 개념인 것 같다. 투쟁은 진화하며 모든 것은 과거로부터 건설된 것이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다. 광화문이 광주와 연결될 때 그 의미는 무엇일까? 오래된 역사적 투쟁과 그다음의 새로운 투쟁들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팀 셔록: 나는 이것이 1950년대 말과 1960년대에서 시작된 것들의 연속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이곳 사람들은 그 뿌리, 이곳에서 있었던 반란의 역사적 뿌리, 권위주의적 정부에 대항해 일으킨 반정부 투쟁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광주와 같은 곳은 중앙 정부에 대항해 일으킨 반란의 역사적 중심지였다. 그곳은 역사에 대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대선 이틀 전에 문재인을 인터뷰했을 때 그가 그렇게 언급했다. 나는 그에게 ‘촛불집회, 박근혜 탄핵, 대선’ 등의 의미를 미국인들에게는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그는 질문에 대답하며 이 역사적 연속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1960년의 4.19, 그가 학생 신분으로 참여했던 1979년 10월의 부마항쟁, 1980년의 광주항쟁, 1987년의 6월 항쟁, 그리고 마지막으로 촛불 혁명을 통해 이어지는 민주주의의 그 선에 대해서 얘기했다. 이곳의 대부분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을 연속체로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이들은 두 걸음 앞으로, 한 걸음 뒤로, 때때로는 두 걸음 뒤로 향하는 하나의 긴 선을 본다. 그러나 항상 앞으로 향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촛불 혁명이었다. 알다시피, 이는 민주주의 전통을 계승하고, 더욱 민주주의적인 한국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처럼,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이들은 너무나도 먼 길을 이미 지나왔다. 한국은 먼 길을 왔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이 모든 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 얼마나 어렵게 싸웠는지 잊지 않았다.

세스 마틴: 일부 한국인들은 그 긴 싸움에 당신이 기여한 바를 조금 알고 있다. 전두환이 이끈 광주 대학살의 무대 뒤에서 미국이 한 수치스러운 역할을 밝혀낸 당신의 연구가 상당 부분 사실로 입증되었다. 당신이 한 일의 의미를 설명해 줄 수 있는가?

팀 셔록: 체로키 파일은 내가 기밀 해제시켰던 4000개의 문서 중 한 부분이다. 체로키 문서는 기본적으로 박정희 암살 시기부터 1980년 말 12.12쿠데타, 그리고 1980년 광주항쟁과 5월 17일의 계엄령 선포, 그리고 쉽게 말해 미국이 전두환을 끝내버린 시기의 남한의 위기와 관련해 미국 정부가 만들고 이름 붙인 문서들이었다. 이는 한국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미국 정부 내의 6~7명 공직자들의 해외 통신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비밀 채널이었으며, 백악관의 인물들, 주한미국대사 글라이스틴, Whickam장군, CIA 국장이었던 Robert Brewster, 그리고 펜타곤의 인물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체로키 문서의 일부는 그들이 대화한 내용이 담겨있으며, 그 후 한국의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메시지로 보내졌는데, 그는 그것을 읽은 일곱 명 중 여섯 번째 사람이었다. 이는 매우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채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더 큰 파일 세트에 약 300~400개의 체로키 파일이 또 있다. 이 파일들은 그 시기에서 가장 비밀스런 소통과 관련된 일들의 일부를 보여준다. 또 미국 정부는 ‘체로키Cherokee’라는 단어를 정보와 외교적인 면에서 수준 높은 소통을 위해 다른 나라, 다른 상황에서도 간혹 사용하곤 했다.

세스 마틴: 미국은 타국과의 전쟁에서 적 또는 적의 땅을 ‘인디언’이나 ‘인디언 영토’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책략이라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팀 셔록: 그럴 것이다. 당신도 알겠지만, JTBC의 최근 한 프로그램에서 한 사람이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체로키 족이 부른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방송에서 재생시켰다. 그리고는 한국인들에게 미국이 민주주의를 위해 광주에서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한국의 독재자를 지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파일에 ‘체로키’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매우 깊이가 있는 멘트였다고 생각했다.

세스 마틴: 당신은 그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팀 셔록: 글쎄, 잘 모르겠다. 그들이 언제부터 그 단어를 쓰기 시작했는지 그 기원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광주에서 한국군은 광주사람들을 적으로 대했고, 광주사태에 책임이 큰 한국군 장군들은 베트남전에서 미국군과 함께 군 복무를 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베트남 사람들을 적으로 대했다. 그들은 그 수많은 극악무도한 행위들에 대해 책임이 있다. 그들은 베트남 사람들을 쳐부숴야 하는 적과 같이 대한 것처럼 광주 사람들을 대했다. 그러나 광주 사람들은 한국군 자신들의 시민들이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이것이 미국이 일으킨 전쟁이 세대를 거치면서도 계속해서 끌고 온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세스 마틴: ‘인디언과의 전쟁’을 포함해서.

팀 셔록: 그렇다. 미국에서 최초로 소위 대반란작전이 계획된 것은 인디언들에 대한 군사작전이었다. 군대의 무력을 사용하여, 철수시키고, 없애버리고, 캠프로 몰아버리고, 문자 그대로 인디언들을 특별지역으로 소몰이하듯 몰고, 그들을 매수하기 위해 사회적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이는 베트남에서 그들이 했던 일과 똑같은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일으킨 많은 전쟁에서 했던 일과도 같다.

세스 마틴: 미국의 오사마 빈 라덴 암살 음모 때와도 같다. 그 작전에서 빈 라덴의 암호명은 유명한 아메리카 원주민 추장의 이름 ‘제로니모’였다. 그는 북미지역에서 미국의 식민지 세력에 대항해 지속적이고 전설적인 투쟁을 이어간 인물이었다.

팀 셔록: 미국은 (그런 식의 이름을) 많이 사용한다. 미군의 헬리콥터, 키오와, 아파치(옮긴이:Kiowa, Apaches는 북미 원주민부족의 이름이다)처럼 말이다. 알다시피, 미국은 그것이 미국 무기에 일종의 허가된 영예를 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은 실제로 대평원과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 자신들이 학살한 사람들에게서 빌려온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체 역사 또한 미국에 묻혀(숨겨져) 있다.

세스 마틴: 당신은 광주에서 일해 왔고, 이제 미국으로 돌아간다.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

팀 셔록: 모르겠다. 나를 위한 다음이란 뭘까. 아마도 나는 계속 글을 쓰고 내가 해왔던 일들을 할 것 같다. 나는 한국에 대해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자료들을 얻고 또 광주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계속 조사할 것이다. 문재인은 광주에서의 피 흘림과 학살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한국 정부가 조사할 것이라고 5월 18일에 말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들은 미국으로부터 문서들을 받아야 할 것이다. 나는 광주 5·18기록보관소와 일해 왔고, 올해부터는 광주시와도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그런 종류의 요청을 해결하는 식으로 중앙 정부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와 관련한 어떤 문서가 하나 있는데, 미국으로부터도 문서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적어도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를 식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당시 한국의 쿠데타 주도자들, 지도자들, 광주에 대한 최초의 공격을 이끈 사람들과 미국 장군들 간의 소통과 같은 단서와 증거가 확실히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알다시피, 반란이 일어나고 반란이 무참히 으깨어진다. 알다시피 나는 기자이다. 나는 민영화된 지성과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해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언젠가 이른 시일에 한국에 다시 오고 싶다.

세스 마틴: 당신은 대통령 유세 기간 마지막 주에 문재인이 승낙한 유일한 서구의 독립 언론인인가? 왜 그는 당신의 인터뷰 요청을 승낙한 것일까?

팀 셔록: 그는 광주에 대한 나의 기사를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나의 기사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일개 독립 언론인의 기사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영광스러웠다. 알다시피 그는 우리가 방금 나눈 한국의 그 시기에 살았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고,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 인터뷰는 나의 작업들을 그에게 소개해준 그의 선거운동 일원 중 광주 출신 누군가에 의해 시작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가 나를 만나기를 원했던 것도 같다. 그는 나와 만나기 약 일주일 전에 워싱턴포스트의 Anna Fitfield와도 인터뷰를 했다. 또 타임 매거진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확실한 건, 문재인 측은 한국에 관해 정말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과 얘기하고 싶다는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인터뷰 기자를 결정할 때 그가 정치적으로 신중한 판단을 했다고 본다. 나와의 인터뷰에서 내용이 가장 길었던 부분은 그 연속체, 역사, ‘잊지 못할 기억’에 관한 부분이었다. 그는 촛불 혁명을 한국의 정의를 위한 기나긴 역사적인 투쟁의 한 부분으로 소개했다. 이는 그 모든 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민주주의 운동에 대한 그 모든 세월의 결과라고 했다. 촛불 혁명은 분명 다르지만 그 일부라고 했다. 문재인 측은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과 인터뷰하기를 원했다.

세스 마틴: 수십 년 동안 당신이 해왔던 일들의 작은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한 노래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대화를 마무리해보자. 문재인이 그의 집무실에서 처음으로 했던 일 중 하나는, 광주의 희생자들을 기념하는 유명한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적인 자리에서 제창하는 일을 공식적으로 허가한 것이다. 이에 대한 의견을 나눠 줄 수 있는가? 그리고 왜 어떤 공직자들은 그 노래를 부르기를 거부하는가?

팀 셔록: 기본적으로 한국의 보수 정권과 우익 세력은 광주의 의미를 훼손하려고 노력하는데, 왜냐하면 한국전쟁 이후에 한국 역사에서 한국군을 상대로 사람들이 일어나 총을 든 유일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주항쟁을 불명예스럽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 노래가 북한과 김일성을 숭배하는 노래라고 지어내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그래서 정부는 관료, 공직자들에게 이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5.18 민주묘지에서 문재인이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다. 광주에서 사람들이 그 노래를 부르고 있는 곳에서 그를 두 번 보았는데, 광주 사람들은 그 노래를 아주 자랑스럽게, 아주 크게, 그리고 자주 불렀다. 두 번의 집회에서 그는 모두 노래를 불렀고,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세스 마틴: 이 같은 순간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새로운 대통령이 주먹을 불끈 쥐고 그 노래를 부른다는 것의 의미 말이다.

팀 셔록: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지난 우익 정부 아래에서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생각할 때 이는 큰 기회다. 그야말로 화해의 행위이다. 광주항쟁을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일부로써 포옹하는 것이며, 역사에서 영구적인 한 부분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가 우선 그 노래를 제창하게 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 광주에서의 반응은 기쁨과 안도였다. 그 기념행사 이후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흐느끼며 울었다. 그러한 인식을 갖게 하는 지도자를 이 나라가 가진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지도자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한국을 위해 치른 희생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지금 저 창밖에 휘날리고 있는 태극기처럼, 광주항쟁에서 시민들은 태극기를 드높이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을 위해 싸웠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웠다. 그리고 수많은 시체가 담긴 작은 관들은 모두 태극기에 싸여 있었다. 정부에 대항해 싸웠던 광주항쟁의 생존자들은 자신들을 한 나라의 주인으로서 여긴 것이라 생각한다. 대통령은 그들을 포옹한 것이고, 그들과 그들의 투쟁을 한국사의 영구적인 한 부분으로 만든 것이다. 이는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 일들이 앞으로의 역사에 지속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한다.

  1. 5. 31. 서울 명동 / 구술한 내용을 글로 옮김
이산 (Seth Martin)
이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