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개월 간 과일즙이 배어나오는 껌을 즐겨 씹었다. 달달한 맛이 가두어 놓는 짧은 몇 분 동안, 나는 투명한 장막을 치며 여러 궁금증에 빠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매번 지치지도 않고 수면 위로 떠오르던 질문들이 있었는데, 그 중 미술제도1)에 관련된 몇 가지는 예컨대 이러했다.

 

  1. 미술제도는 예술가에게 어떤 목적성과 책임감을 부여하는가 : 어쩌면 그 목적과 책임은 미술가에 대한 부차적인 설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 미술제도 또한 스스로 일정한 책임을 갖지는 않을까(제도의 존재/존속 자체가 목적의 유무를 의미하기에 목적성에 대해서는 크게 묻지 않겠다) : 연속되는 시대 속에서 제도는 어떻게 현재를 배양하는가?
  3. 충돌하지 않고 혼화(混和)하는 복수의 미술제도는 존재하는가?

 

이렇게나 복잡하고 무거운 궁금증은 결국 스스로를 향한 것이었다. 일과에 지쳐 고민에 오랜 시간을 투자하지 못했던 것을 질책이라도 하듯이, 이들은 나로 하여금 턱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작은 행동에 끝없이 집중하게 만들었다. 위의 질문들을 입에 가득 문 채로 다녀온 마지막 행선지는 잘츠부르크의 미술협회(Salzburger Kunstverein)2) – 이하 ‘쿤스트페라인’이었다. 1844년에 설립된 이곳은 오스트리아 최초의 예술 전문 기관 중 하나로서 오스트리아 예술가들의 터전이 되어 왔다. 19세기 후반에 시작되었다는 유구한 역사 덕분에 잘츠부르크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1880년대의 건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는데, 2001년과 2010년에 리노베이션을 거치며 현대적인 내부 디자인을 갖추게 되었다. 다만 초기의 설립 목적은 오스트리아 내 군주들과 인접국에 대한 미술품 판매였다는 데에서 현재의 공립 미술 기관과 차이점을 보인다. 즉,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이곳은 현 시대의 갤러리와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쿤스트페라인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1990년대에 들어서야 혁신을 꾀하기 시작했다. 해외 기관과의 협력 사업을 통하여 잘츠부르크의 예술가들을 미국, 이탈리아, 헝가리 등의 레지던시에 파견하였고, 국제 미술 현장의 흐름에 따라 세계 곳곳의 작가와 큐레이터를 선발하여 작업과 전시의 기회를 제공했다. 현재 기관에는 2-3년 유상 대여가 가능한 스튜디오 또한 마련되어 있다. 잘자흐강 근처 도심에 위치한 쿤스틀러하우스(Künstlerhaus)는 말 그대로 ‘예술가의 집’이 되어 전 세계의 작가들을 이십 여 개의 스튜디오로 초대한다.

이쯤에서 첫 번째 질문과 함께 레지던시 제도에 대해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레지던시에서의 작업은 두 갈래로 요약된다. 하나는 한정된 공간에서 유의미한 시간을 창출해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유의미한 공간에서 한정된 시간을 누리는 것이다. 이 중 하나만 이루어도 ‘레지던시’라는 이름의 미술제도는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게 되고, 예술가는 제도가 그들에게 기대했던 무언가를 조금이나마 채우게 된다. 그와 동시에 각자에게 주어진 자그마한 공간에서 작가들과 큐레이터들의 시간은 끊임없이 변환된다. 그들이 맞이하게 되는 것은 3월의 벤치 옆 풀잎의 싸한 향기일 수도 있고, 콧등으로 떨어지는 5월의 초여름 햇살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한 달 내내 멈추지 않는 11월의 빗방울일 수도 있다. 12월에 다다르기도 전에 폭설을 맞이한 오늘의 도시를 그들은 보았을 테다. 마치 2000년대 이후 미술이라는 이름의 기차가 엄청난 속도로 시공간 사이를 가로질러 왔듯이, 계절마다 다른 얼굴의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은 시공간을 양분으로 삼아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다시는 풀 수 없을 듯이 뒤엉켜 있더라도, 그리고 그 엉킨 실이 언제 풀릴지 모르더라도 그들의 세계가 언젠가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완전한 자아로 자리 잡게 될 것을 우리는 선연히 떠올린다.

레지던시에 입주한 이들의 작업이 진행될 때, 쿤스트페라인에서는 생산과 전시, 강연,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류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자면, ‘전시하는 미술관’보다는 ‘미술 현장의 축소판’ 개념으로 존재한다.3) 잘츠부르크 레지던시 사업은 “프로젝트의 완성보다도, 예술 분야 종사자의 네트워킹과 연구를 위한 시공간 제공에 방점을 둔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쿤스트페라인이 제공하는 폭넓은 인큐베이팅을 기반으로 한다.4) 오스트리아 문화부가 주관하는 레지던시5)가 비엔나와 잘츠부르크에서만 진행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협회의 총괄 디렉터이자 큐레이터인 세이머스 킬리(Séamus Kealy, 1972~)는 잘츠부르크 쿤스트페라인이 오스트리아(또는 더 나아가 중부 유럽) 현대미술의 중심적 허브임을 다시금 강조한다. 전 세계 예술가를 대상으로 하는 Spall Art Prize는 자연스럽게 국제적인 관심을 이끌어냈고, 다양한 기관과의 협력은 과거를 반추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서 일종의 결단을 내려야 했던 잘츠부르크 미술계의 혁신과 이어졌다.6) 기관 프로그램 중 하나인 올해의 <October Talks>만 돌이켜 보아도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영국의 문화 비평가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 1943~)과 프랑스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의 시니어 큐레이터 다리아 드 보베(Daria de Beauvais, 1977~) 등 미술계 저명인사들이 초청되었다. 넓지 않은 공간에 모인 이들은 – 그들이 관객인지, 강연자인지, 예술가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 그 날의 주제에 대해 토론하기를 멈추지 않는다.7)

한편, 지난 10월 첫 주에 진행된 아티스트 토크의 주인공 애슐리 한스 쉐이를(Ashley Hans Scheirl, 1956~)8)은 쿤스트페라인의 메인 홀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었다. 잘츠부르크 출신으로서 2017년 아테네와 카셀 도큐멘타에 참여한 바 있는 작가는 비엔나와 베를린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다. 비엔나 현대미술관 MUMOK(Museum Moderner Kunst Stiftung Ludwig Wien)의 소장품전에서도 볼 수 있었던 그의 작품은 트랜스젠더/신체/섹슈얼리티와 같은 주제를 다룬다. 다만 작가의 정체성과 작품 세계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기 전에, 우선 의미가 쉬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전시의 타이틀 <Ob_Scenery>를 세 개의 단어 ob, scenery(풍경), obscene(음란한, 외설적인)로 쪼개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ob’은 ‘~인지 아닌지’, ‘~ 때문에’, ‘~중에’ 등 여러 뜻을 지닌 독일어로, 뒤이어 등장하는 단어에 따라 번역이 달라지는 탓에 의도치 않게 의존적인 단어로 등장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다음과 같이 넓은 해석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ob/scenery :

풍경인지 아닌지’ – 당신이 보는 것은 이 세계를 묘사한 풍경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풍경으로 인해’ – 누군가는 충격을 받겠지만, 이것은 실재하는 풍경일지도 모를 일이다.

수많은 풍경 중에’ – 그 중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obscene/ry :

음란하고 외설적인 풍경’ – 그것은 정말 음란하고 외설적인가?

 

Scenery’ 또한 단순한 풍경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매년 여름 세계 최대의 클래식 음악 축제인 잘츠부르크 음악제(Salzburg Festspiele)가 열리는 도시에서, 연극적으로 보일 만큼 새빨간 자태를 지닌 건물에서, 그리고 캔버스가 무대의 가벽이 되어 놓이게 된 전시장에서 작가는 ‘풍경’을 논한다. 수많은 레이어들이 겹쳐져 탄생한 장소 특정적 내러티브는 작품의 건축적 형태에 착색되어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 맞물리게 된다. ‘derivative(파생물)’, ‘deviant(일탈하는)’ 등의 단어가 반복되는 유화작품 <Ob_scenery 1>, <Ob_scenery 2>에는 소수자로서 살아온 작가의 인생이 담겨 있다. 마치 극 중 대사를 보여주듯이 전면에 앞세운 단어들은 어지러울 정도로 잔인하다. 본래 설계도와 다르게 태어난 인간, 평균을 벗어나 일탈하는 인간은 그 스스로를 가리키며 전시의 서론을 써내려간다. 특히 양쪽 벽에 투사되는 두 개의 비디오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작가의 궤적을 기록한다. 균형을 잃은 캔버스를 마주한 채 쉼 없이 재생되는 이들은 신체가 행할 수 있는 다양한 제스처들을 보여준다. 하나의 행동이 시작될 때 영상 속 인물들은 아이덴티티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데, 이는 40여 년 간 마무리될 수 없었던 ‘정체성에 대한 자문’을 상징한다.

그에 비해 obscene은 비교적 명료하다. 트랜스젠더라는 아이덴티티와 함께 노골적인 묘사 방식으로 관객에게 손을 내미는 작가는 외설과 음란을 사회/문화에 대한 비판의 태도로 취한다. 일례로, 전시장 너머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갈색의 배설물 덩어리는 만화책에서나 등장할 법한 금화를 낳는다. 원색으로 가득한 전시장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금화는 자본주의에서의 성공을 위해 극단적인 외적 변화를 일삼는 모든 것들을 상징한다. 자본주의와 부패를 동시에 조롱하며 부에 대한 회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작가는 이를 2차원으로 변환시켜 화폭에 옮기기도 한다. 핏줄이 드러난 손으로 연극 무대의 붉은 커튼을 당기면, 관객은 그 뒤에 숨겨져 있던 부패사회의 오물을 발견하게 된다. 이와 연결되는 것으로서, 전시장 중앙에 길게 늘어뜨려진 검붉은 실물 커튼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직접 사회의 이면을 되돌아보게 한다. 커튼을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우리가 곧장 발견하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음란함’이다. 그녀의 의견을 바탕으로 한다면 – 혹자가 말하는 작가의 퀴어/섹슈얼/트랜스젠더 아트의 ‘음탕하고 난잡한 표현’보다도 더욱 외설적인 것은 더러운 이가 더러운 돈을 낳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현실이다. 이처럼 모티프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각 작품의 매체나 제목이 무엇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터였다.

다시금 전시의 제목으로 돌아오자면, 앞서 나열한 번역 중 의미가 완벽히 들어맞는 하나를 꼽는 것은 불가능하다. 타이틀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있지는 않더라도 쉬이 떠올리게 되는 단어 obscure가 ob과 _scenery 사이에 암호처럼 숨겨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난해하고 모호한 것은 작가의 유화 작업에서 반복되는 또 다른 모티프인 구름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회색과 흰색이 섞여 점차 탁해지는 구름들은 작가의 정체성을 고의적으로 가리려 했던 이전의 칼날들을 숨기고 있다. 빛을 잃은 하늘을 한껏 덮은 안개 또한 소수자를 억압하던 시대의 정치사회적 메타포가 된다. 결과적으로 작가가 무대에 세운 중의적 표현은 묘연하지만, 그로 인해 더욱 정확해진다. 관람객들이 부화뇌동하지 않고 본인의 줏대를 세운 채로 이 무대를 감상하기를 그는 바랐을 것이다.

메인 홀의 바깥으로 나온 뒤에도 무대는 계속된다. 애슐리 한스 쉐이를과 마찬가지로 잘츠부르크 태생인 작가 군다 그뤼버(Gunda Gruber, 1971~)는 건물 왼편의 작은 방 ‘캐비넷(kabinett, 방의 입구에는 [kabinέt]이라는 독일어 발음이 커다랗게 쓰여 있다)’에서 소개된다. <Fast forward rewind>라는 전시 제목과 함께 시간과 공간의 기존 영역을 파괴하는 작가의 작품은 적절하게 혼재된 매체 문법을 기반으로 한다. 양극단에 있는 개념 – 내부와 외부, 실제와 가상, 실물과 모델은 5평 남짓한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변환된다. 공간에 대한 질문을 지속해온 작가로서, 군다 그뤼버는 이 공간을 사회적 구조체이자 일상적 경험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삼는다. 관람객은 변화하는 작은 공간에 들어가 일상의 변주를 지켜보는 동시에, 그 스스로도 작업물의 일부가 되어 움직이게 된다. 물론 작품 <Zentrum&peripherie(중앙과 주변부)>의 주된 기초가 목재와 하드보드 등 건축 스튜디오나 작업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재료라는 점에서 거대한 세계를 상상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 한계점은 동적인 비디오 인스톨레이션과 정적인 건축 모델이 동시에 등장할 때 타파된다. 빛 축제나 파사드(façade) 작품에서 쉬이 볼 수 있는 풍경을 떠올려 보자. 매일 아침 지나치던 시청의 건물에 무언가가 표류하는 순간을 상상해 보자. 그리스 조각의 하얀 얼굴이 그러하듯 정제된 표정으로 모서리를 가득 메우던 건축 모델들은 방을 가득히 채우는 사운드 인스톨레이션과 끝없이 흔들리는 영상으로 인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생되는 영상은 좀처럼 흑백의 구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무채색으로 가득한 화면은 주로 코미디 장르였던 초기 무성영화의 특징을 오마주하는 듯하면서도, 속도감 있고 날카롭게 흘러가는 1920년대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를 차용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는 건축 구조물 위에 드리운 그림자에 두 가지 얼굴을 덧대며 상상력의 방아쇠를 당긴다. 작가는 화면에 내러티브를 녹여내는 대신, 이미지의 외적 형태만으로도 새롭게 다가가는 실험적 방식을 취한다. 동시에, 문학의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Verfremdung) 기법을 영상문법의 단계로 옮겨와 정해진 장소에 굳건히 자리하던 오브제를 무너뜨린다. 이는 관객 네다섯 명만이 들어갈 법한 좁은 공간의 풍경을 깨는 것이자, 장르의 장벽을 부수어 새로운 배경을 창출해내는 전략이었다. 뿐만 아니라 ‘작은 방’이라는 전시장의 이름에 걸맞게 우리는 작가의 스튜디오에 몰래 들어가 그의 작업 과정을 엿보게 된다. 마무리가 되었는지조차 불확실한 구조체 위로 영상은 계속 부유하지만, 관람객은 각자의 환영(幻影)에 잠겨 임의로 작품을 완성시킨다. 이곳을 나서는 모든 이들에게 군다 그뤼버의 작품은 서로 다른 순간의 형상으로 기억될 것이 분명했다.

500m²의 전시 공간은 유기체적으로 하나의 원을 그려낸다. 전시장의 네 모서리를 순서대로 거닐다 보면, 동물과 식물의 형태로 일체화된 부조들이 흰 벽 위에 가득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1, 2차 리노베이션을 통하여 기존 건물 안팎의 공용 공간이 확장된 이후, 미술관 내부를 아우르는 천장은 링갤러리(ringgalerie)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어 세 번째 전시공간으로 탈바꿈되었다. 니콜라 뢰터메이어(Nikola Röthemeyer, 1972~)와 아니카 세일러(Annika Sailer, 1975~) 자매가 구성해내는 영역은 2차원의 벽화인 동시에 생명력이 입혀진 3차원의 입체 공간이다. 각각 비주얼 커뮤니케이션과 조경을 전공한 예술가로서 그들은 고대 동굴 벽화에서 주로 그려지곤 했던 대상들을 오늘날 고고한 흰색의 벽에 재현해낸다. 한쪽 면에서는 새들과 물고기, 곤충들이 무리를 지어 동물의 형체를 닮은 구름 속으로 뛰어들고, 직각으로 고개를 돌리면 사슴과 늑대가 나부끼는 나방들과 함께 천천히 걸어온다. 이때 내부의 아치와 기둥, 그리고 천장은 바다와 상공을 나누는 기준점으로서 작품의 일부이자 무대의 골격이 된다. 사이사이에 놓인 벤치들 또한 동물들이 잠시 쉬어가는 나무둥치로 전환되는데, 이들이 동시에 향하고 있는 천장의 철제 그물은 전시의 제목이자 작품 연작의 타이틀로 이어진다.

<Schwarmfämger>는 무리를 잡는 것/무리를 잡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합성어로, 전시에서는 동명의 작품 1-5번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작가 노트에 따르면, (전시의 흐름에서 명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와 같은 명칭은 미국 원주민들의 성스러운 전통 ‘드림캐처(Dream catcher)’에서 따온 것이었다. 주지하듯이, 그들의 문화에는 드림캐처를 머리맡에 두고 잠들면 악몽을 꾸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다. 그 원인은 일반적으로 ‘드림캐처가 악몽을 막고 무찌르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작가는 ‘드림캐처가 악몽을 잡아두었다가 이를 아침 햇살에 중화(neutralize)하는 과정에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표현은 인간의 세계와 자연의 세계가 접촉하는 중간 지점에서 인간성에 대한 치유가 이루어진다는 노트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표현이 피상적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긴밀한 접촉 영역이 가시화되는 이유는 미술관을 거닐던 관람객이 이 가상의 세계에 대해 관조적인 태도를 취하는 데에 있다. 일반적으로 생태계 파괴의 주체로 인식되던 인간은 이곳에서 자연의 내러티브를 발견하고, 공멸과 공생의 틈새에 존재하게 된다.

크게 세 곳으로 나뉜 전시공간을 한 바퀴 돌고 난 뒤 마주친 것은 건물의 위층과 아래층으로 동시에 향하는 달팽이형 계단이었다. 작은 원형의 동선을 몇 번이고 그리고 난 뒤에야 각 층에 도달할 수 있었는데,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던 22개의 방9)에는 탄생의 울음을 토하는 작품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쿤스트페라인 내부의 작품들, 이른바 ‘동시대 미술’이라 불리는 것들은 생몰(生沒)의 기제를 지닌 채 세포분열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매일같이 응축되는 미술제도의 노력은 환류되는가?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는 늦은 시간까지 디렉터와 관객의 대화가 진행되고, 그 옆에 놓인 세 전시장이 휘몰아치며 트릴로지의 내러티브를 풀어낸다. 오픈 스튜디오로 관객들을 초대하던 방은 그 자체로 인큐베이터가 되어 언젠가 미술사의 편린이 될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제 전시장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화학적 작용을 상상해보겠다. 전시장의 모든 구성원이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되면, 레지던시에서 이루어지던 창작물은 도시에 흩날리던 것들을 흡수하고 – 그 작품은 더 이상 전시장에만 갇히지 않게 되며 – 다른 이들의 작품과 더불어 하나의 무대를 꾸미게 될 뿐만 아니라 – 나아가 숱한 이들의 터전이 되는 공공장소로 확장되고 – 영원히 불타지 않을 텍스트10)로 단단해진다. 물론 극히 이상적인 시나리오일 수 있으나, 결국 이 특정한 시공간에서 만들어지고 행해지는 것들은 이곳을 점이지대로 만들어낸다. 이는 쉬이 매설되어 사라지곤 했던 전시 이전과 이후의 시간이 아카이빙의 시대 이후 가시적 범주로 끌어올려졌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결국 창작 이전과 이후의 순간에 서로 유리되지 않은 채로 존재하던 반투명하고도 유의미한 관계들은 작품을 낳은 복수의 주체가 된다.

모든 시대의 미술은 언젠가 미술의 역사로 편입된다. 이미 그러하지만, 몇 백 년이 지난 뒤에는 현대미술 또한 ‘더욱 오래된’ 미술의 역사가 되어 묘연했던 시대의 시작을 각자의 방식으로 설명해낼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의 기저에는 언제나 타인, 타인과의 관계, 타인이 만들어낸 제도, 심지어는 타인으로서의 제도가 있을 것이다. 무엇이 무엇을 낳았는지 – 그 인과관계에는 더 이상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겠다. 다원적이고도 회의적인 시대에 선택의 순간을 숱하게 맞이하게 될지라도, 탄생하는 것들에게는 미래만이 존재할 뿐이다.

 

 

1)  ‘미술제도’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루기는 실로 어려우나, 美術制度, 또는 Art System이라는 용어로 설명을 대체하겠다. 이는 사회에 미술이 녹아드는 방법론이기도 하고, 미술현장과 대중이 만나게 되는 행정적 장치이기도 하며, 미술이 예술이라는 이름의 틀에 갇히지 않고 향유 가능한 형태로 변환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2)황금홀로 잘 알려져 있는 비엔나의 악우협회(Wiener Musikverein)와 같이, 기관의 명칭은 일본식 번역체로 인하여 ‘협회’가 되었으나 사실은 각기 음악을 ‘연주’하고 미술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3)앞서 언급한 세 번째 질문과 연결해볼 수 있겠다. 이에 대한 평가는 보류하고, 총괄 디렉터의 이야기를 기다려 보기로 한다.
4)이번에는 두 번째 질문과 연결해보자. 비영리 미술 기관의 책임감은 실로 많은 것을 낳았다.
5)잘츠부르크 주(州)와 잘츠부르크 시(市)의 레지던시 사업 간 지원 금액의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두 사업 모두 쿤스트페라인에서 담당하여 운영한다.
6)올해의 수상자는 프랑스 출신의 사진작가 Pierre Descamps(1975~)이었다.
7)청소년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쿤스트페라인은 단순하고 쉬운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대신 특정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진행함으로써 탐구자의 자세를 취한다.
8)이외에도 Angela, Angela Scheirl, Angela Hans, Angel Hans, Zeze Hans, Ah, A A A A, Hans, Hansi, Hansda, Hansvon S/hi, Scheirl 등의 이름을 사용해왔다.
9)피터 하스(Peter Haas), 아스트리드 리더(Astrid Rieder), OENM 앙상블 등의 예술가가 입주해 있다.
10)쿤스트페라인은 매년 <Magazin>이라는 이름의 연례 보고서를 발간하여 한 해 동안 기관에서 개최되었던 전시와 그에 대한 비평문을 정리한다. 2018년엔 23호가 발간될 예정이다.

 

 

이 원고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 ‘2018 시각예술 비평가-매체 매칭 지원’을 받아 게재되었습니다.

 

 

 

 

필자 : 전민지 wjsalswl1109@naver.com
학부와 대학원에서 문학과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어디서든 글을 쓰고, 가끔 기획을 하는 노마드 연구자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