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지구는 살아있나요?

 

“자연은 주는 가르침은 달콤하지만, /

우리의 지성은 이를 간섭해서 /

아름다운 자연을 왜곡시키고, /

해부하여 죽이고 있다네“

-윌리엄 워즈워드 (William Wordsworth)의 시 ‘입장전환(The Tables Turned)’에서 발췌

 

5월 18일, 나는 한 한국 초등학교의 영어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날의 학습목표는 “생물”과 “무생물”의 개념의 이해였는데, 교과서에선 생물과 무생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었다.

생물: 공기, 음식, 물, 주거지가 필요하고 언제나 변화하고 성장한다.

무생물: 공기, 음식, 물, 주거지가 필요하지 않으며 변화하지도, 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용어와 개념들을 간단히 살펴본 후, 우린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담은 두 쪽의 그림 속에서 “생물”과 “무생물”을 찾아 분류했다. 그림엔 산 하나와 힘차게 흐르는 냇물과 늑대가 그려져 있었다. 산 아래엔 야생화들이 활짝 피어있었고, 힘차게 흐르는 냇물 속엔 물고기가 살고, 냇가 주변엔 돌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생물과 무생물의 개념 학습을 마친 뒤 그림을 한 번 보고, 다시 페이지를 넘겼다. 마지막 학습 단계로 생물과 무생물을 정확하게 식별하는 과제가 제시되어 있었고, 책에는 다음과 같은 정답이 쓰여 있었다: 늑대, 물고기, 야생화는 생물이고, 산과 물과 돌은 무생물이다. 학생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산과 물과 돌들도 살아있는 생물이죠!”라며 그들은 항의했다. 이에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책에 나온 ‘생물’의 정의는 어쩌지? 산과 물과 돌도 책이 말하는 ‘생물’일까?”라고 되물었다. 잠깐의 정적 후, 한 남학생이 외쳤다. “네, 그럴 수 있어요!” “어떻게?”라고 물었더니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들도 음식을 먹어요! 산은 먼지를 먹고, 물은 햇빛을 먹고, 돌은 금으로 가득해요. 돌은 금을 먹으니까요!” 이에 나는 “그래, 그렇구나!” 라며 동의했고, 계획했던 진도를 다 나가지 못하고 수업을 마쳐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날 우리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논의를 했다고 본다.

아이들은 한국어로 쓰인 미국 영어 교과서의 단순한 개념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 하지 않았고, 그 개념대로 세상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아무리 책에 “산, 돌, 냇물은 무생물이야”라고 쓰여있을지라도, 아이들은 뼛속 깊이 이런 주장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책에 나온 전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지만, 결론에선 그렇지 않았다. 인상 깊었던 수업은 이 후 내 머릿속에 여러 질문을 파생시켰다. ‘도대체 어떤 사람과 회사가 이런 학습내용을 만들어냈을까? 이런 단순한 수업이 과연 우리의 현실을 어느 정도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상 언어와 정의에 대해 재미있고 창의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아이들처럼 알 수 없는 권위적인 힘에 굴복하지 않고 즐겁고 창의적이고 살아있는 언어와 개념을 구사할 수 있을까?’ 나는 아이처럼 소수의 순수한 사람들만이 가능하다고 본다. 아이들은 들은 내용이 무조건 틀렸다고 우기지 않았다. 그들은 재빠르게 주어진 전제를 창의적으로 뒤집어 새롭게 만들어냈다. 경이롭고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영어권 국가에서는 일찍부터 물과 산과 돌이 무생물이라 가르치고 있는 상황을 볼 때, 지금 우리의 모습에 놀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강과 산과 돌을 소신 있게 옹호하는 사람이 극소수라는 점이 당연하지 않은가?

미국 야생지의 파이프라인 건설에 반대하는 구호, “미니 위코니 (Mni Wiconi), 물은 살아있다”가 울려 퍼지고 있다.

한 팔레스타인 농부는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 프로젝트를 맡은 대표들에게 선언했다. “자연은 나의 어머니며, 판매품이 될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은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외쳤다. “구럼비는 살아있다, 구럼비를 죽이지 마라!”

성경의 예언자들은 미친 왕들 앞에서 그들의 제국은 신의 인도가 필요하다고 노래했다. “만천하에 주님의 영광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예수는 말했다. “나를 믿는 이 어린이들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는 자에겐 화가 미칠지어다. 이러한 이들은 차라리 맷돌을 그 목에 달아 바다에 던짐이 나으리라.”

“선생님,” 수업이 끝날 무렵에 한 학생이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러면 지구는요? 지구는 생물이에요, 아니면 무생물이에요?” 지구는 살아있는가?

그날은 2017년 5월 18일, 나의 제2의 고향, 한국에서의 일이다. 나는 수업을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면서 1980년도의 또 다른 5월 18일을 떠올려 보았다. 태평양 북서부의 한 휴화산이 사납게 분출하여 나의 고향을 모조리 먼지로 덮었다. 30개가 넘는 다리가 엄청난 홍수로 산산이 부서졌고, 숲과 집, 도로, 야생동물, 빙하 조각과 산자락을 순식간에 지워버렸다.

그다음 한국의 1980년 5월 18일을 생각했다. 루위트(Loowit)라고도 불리는 세인트 헬렌산(Mt. St. Helens)이  왕성한 생명력을 세상에 알리던 그 날. 광주 시민들은 스스로 무장한 채, 미국 정부의 지원하에 남한 군부 독재자가 벌인 민간인 대학살에 맞서 목숨을 바쳐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루위트의 화산 폭발 이후 타버린 대지와 재로 뒤덮힌 들판 위로 자라는 잡초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광주의 생존자들에게 바치는 자유의 노래이자 저항과 기억의 상징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부패한 지도자를 비폭력으로 감옥에 보낸 서울의 촛불 시위자들을 떠올렸다.

 

물은 물고기를 먹는다

산은 나무와 돌을 먹고

돌은 금을 먹고

불탄 자리에 잡초가 피어오른다.

촛불은 어둠을 가르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있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든 것은 살아있다.

 

다음날 수업시간에 나는 아이들에게 이전 시간에 배운 내용을 기억하는지 물었다. “네” 한 여자아이가 대답했다. “생물은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고, 집이 필요해요….. 그리고 산은 나무를 먹고, 강은 물고기를 먹고……” 이어서 누군가 대답했다. “그리고 돌은 금을 먹어요!” 어제 그 소년이었다.

이산 (Seth Martin)
송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