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전경대 터 내 위병소 미술관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초시 안덕면 화순문화로 22번길 15-1에 위치한다. 2016년 10월 1일 개관해, 2주마다 한번씩 전시를 교체하고 있다. 대표전시는 <화순전경대-장소탐구>, <위병선임들>, <문,침범과 공간>, <유연한 조각>, <대피소-이곳으로 피하십시오>, <序詩다시쓰기>, <단 한사람을 위한 전시: 금연캠페인>, <잃어버린마을_유적발굴> 등이다. 2017년 10월을 마지막으로 미술관 운영을 마쳤다.  

 

이상이 <위병소미술관 프로젝트>의 개요다. 1년간 작업을 이어간 프로젝트는 김서정 작가가 스스로 마을의 위병이 되어 화순 전경대 터, 그 주변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나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반응하며 작업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화순전경대-장소탐구>는 위병소미술관의 첫 작업이다. 안정과 불안정이라는 감정의 궤적을 좇으며 그 감정 상태를 유발하거나 연관되는 장소와 이야기들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탐험하는 작가는 화순 전경대 터가 안정과 불안정의 경계에 있다고 여겼다. 오랜 기간 방치된 공간은 아무런 활동이 일어나지 않는 공간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자연에 의해 침식되거나, 오며 가며 들르는 침입자들이 만들어 낸 쓰레기와 낙서같은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겨지고 있었다. 멈춰있는 곳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움직이는 곳, 안정적인 곳처럼 보이지만 불특정으로 노출되어 있는 불안정한 곳, 이 장소를 탐구하고 기록한 사진 작업이 전시돼 있는 미술관이 등장한 것이다.

 

<위병선임들>은 화순전경대에서 상시 근무하며 경계, 순찰등의 임무를 하는 한 무리에 대한 이야기다. 막사 근처에 머무르며 낯선 사람이 오면 가장 먼저 달려나와 경계하고, 작가보다 먼저 위병 역할을 하던 군선임인 이들은 사실 동네 개들이다. 그들의 초상을 전시한 데선 작가의 위트를 엿볼 수 있다. 안정과 불안정의 경계를 탐험하는 것처럼, 진지함과 유머의 경계에 놓인 전시가 <위병선임들>이다. 의젓한 표정으로 작가의 몰카에 잡힌 동네 개들의 초상은 일견 듬직해보여서 우스꽝스럽다. 시종일관 진지한 작가의 카메라 너머의 시각이 웃음을 유발한다. <문,침범과 공간>은 제주의 자연이 만든 작품이다. 제 18호 태풍 ‘차바’가 제주를 덮쳤을 때, 위병소 미술관은 건물의 형태는 있지만 창문과 문이 없었다. 실내와 실외를 구분짓는 장치들이 없고, 벽만 있는 공간에 태풍의 영향은 컸다. 태풍은 위병소 미술관을 침범했고, 작품은 사라지고 텅 빈 공간만 남았다. 그 공간 자체를 전시한다는 건, 결국, 자연이 만든 작품을 전시했다는 뜻이다. 어디까지가 인간이 만든 것이고, 어디까지가 자연의 영향인지 애매한, 작가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경계’가 다시 등장하게 되는 지점이다.

 

그 다음 프로젝트인 <유연한 조각-지시문>은 지시문이 만드는 작품이다. 순서는 간단하다. 1. 주변에서 마음에 드는 나뭇가지를 가져오시오. 2. 벽에 걸려있는 연결도구를 고르시오. 3. 중간에 있는 조각에 자신의 나뭇가지를 연결하시오. 4. 그리고 자리를 떠나시오. 위병소 미술관 앞에 버려진 쓰레기에서 발상을 얻어 사유지와 공유지, 그리고 그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 데 대한 답이다. 지시문 하나로 미술관 옆에 나뒹굴던 나무들이 관객에 의해 조각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그렇게 관객들이 작품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도 도입하면서,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와 작품의 경계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사유지도 공유지도 아닌 곳, 미술관도 위병소도 아닌 곳, 작품도 쓰레기도 아닌 것, 작가도 관객도 아닌 사람 등, 정확치 않는 것들에 대한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어떤 작품도 없는 듯 한데, 작품의 존재감은 정확히 있다. 똑똑한 개념미술의 승리다. <대피소-이곳으로 피하십시오>는 우연히 인스타그램에 위병소미술관이라고 올라온 글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옛 위병소 자리에 작은 미술관.. 갑자기 비가 와서 대피소가 됐다.” 한 장소가 그 곳을 사용하는 사람의 목적과 생각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됨은 작가가 고민하던, 경계에서 왔다갔다하기를 드러내주는 것이었다. 작가에겐 미술관인 마을의 폐허같던 위병소가, 많은 과정이 지난 누군가에겐 대피소가 됐던 것이다. 작가의 경계를 오가는 실험은 그렇게 관객참여의 실효를 거두며,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다시 응답하며 성공을 거둬가고 있었다.

 

2017년의 첫 전시이자 6번째 전시는 <단 한사람을 위한 전시: 금연캠페인>이었다.

위병소미술관을 방문하는 방문객 한명한명에 집중하는 이 프로젝트는 화순전투경찰부대 터와 위병소 인근의 방문하는 방문객들의 움직임과 행동 패턴을 관찰하고, 작가가 그에 반응해 만드는 작업이다. 그 첫번째로 시작된 금연캠페인은 위병소를 흡연실로 사용하고 있는 방문자에 대한 작업으로, 다양한 형태의 담배와 인체와의 관계, 금연에 대한 자료들, 표식들이 전시된다. 그리고 두번째 방에서는 이곳에서 담배 대신 그가 할 수 있는 다양한 행위들을 제안한다. 적극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가고 통제하지 해보려는 방식은, 작가가 경계지점에서 관객에 의식까지 건너가 보려는 또 하나의 실험이다.

 

김서정 작가가 위병소를 중심으로 진행한 일련의 전시들을 골라 나열했다. 하나하나 기발하고, 즐겁고, 다르다. 작가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규칙과 그를 지켜나가는 방식들이 모두 긴장감을 잃지 않을만큼 흥미롭다. 그의 작업들은 내게 자연스럽게 소피 칼(Sophie Calle)의 유희이자 게임 같은 프로젝트들을 떠올리게 했다. 이를테면 <고담 핸드북(The Gotham Handbook)>같은 것. 뉴욕의 소설가 폴 오스터(Paul Auster)가 소설의 주인공처럼 소피 칼에게 캐릭터를 부여하면 그에 따라 실행하겠다는 의지를 소피 칼이 전했고, 오스터는 뉴욕의 공중전화 부스를 개인공간으로 점유해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세세히 적을 것을 명한다. 그 공중전화 점유기간 동안의 사진과 글 기록이 <고담 핸드북>이 됐다. 이렇게 사진과 글쓰기를 결합한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소피 칼이 김서정의 작업들을 짚어가는 내내 머리 위로 스치던 것은 자연스럽다. 이를테면, 전경대 위병소로 쓰였던 공간을 활용해 시각예술 관련 마을 오픈 레지던시 겸 미술관을 연 것은 공공의 장소를 미술의 개념으로 사적인 공간으로 점유한 행위다. 처음부터 공중전화부스를 점유했던 소피 칼의 프로젝트를 떠올렸던 것이다. 김서정은 그렇게 점유한 곳에 주1회 이상 방문해 마을의 위병으로서 관찰을 하고 그날의 사건이나 이야기 등을 작업으로 표현하고 전시한다. 그 날 그 날의 이야기들을 기록한 것은 소설과 일기의 경계에 있음직한 글쓰기고, 사건 현장들을 찍은 사진들은 작품이 된다. 소피 칼에게 직접적으로 빚을 졌는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작품을 감상하는데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굳이 소피 칼을 들먹이며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작가가 제주도에서도 시골에 스스로를 몰아넣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진행한 프로젝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개념미술가의 프로젝트와 개념적으로도 결과물로도 유사함을 내 개인적으로 찾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지금 시점에 유효한 현대미술의 언어를 사용해, 제주라는 장소성을 매력적이고도 세련되게 소화해냈다는 말이다. 소피 칼보다도 유머러스하기도 하고, 그에 빗대기 어려울만큼 더 매력적인 설치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게 소피 칼의 후예라는 말을 쓰기 어렵도록, 김서정 작가만의 언어들을 만들어간다. 소설보다 다이나믹한 작가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적는 것으로도 이미 충분해서, 비평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더 적어야 작가의 향후 작업에 일말의 보탬이 되는건지 고민을 많이 했다. 소피 칼에 빗대는 것도 조심스러워서, 솔직히 평론을 쓰기 좋은 소재를 제공하는 작가인 동시에, 본인이 글을 충분히 잘 쓰는 작가라 평론을 쓰기 어려운 작업이기도 한다. 김서정은 끊임없이 본인을 불안정한 상황에 두고, 작업을 확장시키면서, 본인을 소설 속 캐릭터로 만드는 게 아니라, 인생을 소설처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본인의 이야기에 관객들을 적극적으로 초대하기도 하면서, 삶 전체를 하나의 개념미술이자 게임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렇게 삶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은 작가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는 것은 마치 그의 삶에 개입하는 것만 같아서 조심스러워진다. 그의 삶을 응원하듯 작업을 응원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작가는 어찌 생각할런지 모르겠다. 작업실에서 그의 작업 얘기와 살아온 얘기를 섞어 들으면서부터 들기 시작한 생각이고, 작업들을 꼼꼼히 살피고 글로 정리하는 내내 버리지 못한 생각이기도 하다.

 

 

필자 : 이나연
<씨위드> 한글판 편집장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