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 샤피로의 작업은 조각과 페인팅 사이를 넘나든다. 그녀의 작업은 특정한 형태를 가진 고전적인 예술의 개념에 반한다. 그녀의 작업은 어느 위치에 놓이더라도 스스로 자연스레 자리잡는 제2의 피부처럼 어디서든 유연하게 형태를 지닌다. 주어진 공간은 작업이 이루어지는 무대이자  작업과 관련되며 작업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이 전시의 다른 많은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녀의 유대인 가족사와 그녀의 정체성과 그녀의 예술작업들은 확고하게 정의되지 않으며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정체성은 예술적 형태에 상응하는 것들을 찾는 상호작용과 대화를 통해 형성된다. 어쩌면 이러한 정체성은 중요한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구겨진 가느다란 종이 조각을 염색하고 왁스에 담가 제작된 그녀의 작품은 최종적으로 중력에 의해 완성된다. 단단히 굳어지는 골화 과정과 움직임 사이를 넘나들며 경이로운 구조가 마침내 탄생된다. 오랫동안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라 여겨졌다. 각 개인은 안정적이고 분명한 ‘핵심 성격’에 기반해 정체성이 형성된다고 믿어져 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정체성을 역동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정체성은 결코 억세지 않으며 충분히 바꿔질 수 있고 새로이 만들 수도 있다. 이는 애나 샤피로의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그녀의 종이 작업들은 순간적으로 형태를 지니지만 계속해서 변화한다. 유대인이 생각하는 정체성의 개념을 따르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계속해서 변화하는 다른 형태들로써 존재할 뿐이다. 또한 이러한 접근은 자유의 순간들을 가져다 준다. 이러한 배경에 맞서, Vot ken you mach? (너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란 문장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로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 : 크리스티안네 멘네케 슈바르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