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업의 대부분은 대상과 대상 간의 관계성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이 결국 우리의 인식 속에 존재하는 허상일 수도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러한 점은 아주 미묘한 공간을 유발한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타인의 일상과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나의 작업방식이다. 그들의 일상에 다가가기 위한 공간은 멀찍이 물러난 나의 시선에 의해 환상의 것이 된다.

의도하지 않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래서 때론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타인의 삶을 관조하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관조하긴 하지만 우리의 이기적인 시선에 의해서 그들의 본모습 그대로를 바라보지는 못한다. 멀찍이서 바라보는 그들의 일상과 내 시선 사이에는 환상의 공간이 존재하는데, 나에게 이러한 미묘한 공간을 깨닫는 순간은 하강도 상승도 하지 않고 공중에 붕 떠있는 정점의 순간과도 비슷하다. 각 개인의 일상이 신기루처럼 나에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삶에 끼어드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며, 그들의 일상은 순간이 아니라 그대로 영속될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가장자리에서 바라보는 그들만의 즐거운 생활이다. 나는 여기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은 저곳에서 마음 둘 곳 없는 또 다른 어떤 이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 작업의 목적은 결국 타인의 삶을 그저 관조하는데 그치자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에 대한 인정을 바탕으로 타인의 삶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애착의 마음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앞서 했던 작업들에서 조금 더 발전시켜 타인이 직접 말하는 타인의 장소를 내가 회화로 옮기는 작업을 해왔다. 마음 둘 곳 없는 또 다른 어떤 이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내 그림 속 그들의 마음의 장소가 궁금해진 것이다.

그래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들만의 마음의 장소이지만 실재하는 공간을 알아보고 그 장소에 대한 짧은 코멘트를 받은 후, GP S좌표를 활용하여 그 공간을 직접 다니며 그 장소들에 스며든 그들의 삶과 내 시선을 회화로 시각화하고 있다.

5-6년 가까이의 인터뷰 과정 속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장소는 단지 장소가 아닌 기억의 파편, 기억의 왜곡, 포장된 기억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회화뿐 아니라 그 장소에서 수집된 물건들로 이루어진 설치작업도 진행했다.

사람들과의 인터뷰 과정 속에서 그들이 말한 공간에 대한 느낌을 최대한 살려보려 하지만 결국 그 장소에서 내가 느낀 나의 이기적 시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선의 차이가 관계 속 거리감이 되고 새로운 공간이 된다. 일상의 모습을 배경으로 신기루처럼 있지만 있지 않기도 한 관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뭔가 항상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항상 들어왔고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 조금씩 지쳐가게 되었다.

 

그즈음인 1년 반 정도 전에 야쿠시마 숲에 다녀왔다.

해외여행이 처음인 내가 즉흥적으로 결정한 여행지가 원시림을 간직한 숲이라니… 무엇을 보고 싶었던 것 일까? 사람들 사이에서 잠시 떨어지고 싶었던 것도 같다. 그러나 내가 온갖 생명이 꿈틀거리는 그곳에서 결국 본 것은 삶, 서로가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공생이었다. 죽음과 생이 뒤엉켜 하나의 거대한 생명이 된 그곳에서 결국 온전하게 타인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여러 인터뷰 과정들 속에서 알게 된 내밀한 타인의 삶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만 사랑을 주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사실이 불편했다. 나 역시 이기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았고 그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을 포착하면서 결코 다가갈 수 없는 공간, 그 자체만을 표현하는데 치중해왔다.

 

이제야 온전하게 여전히 불편한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각자의 방식대로 사랑을 표현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인정하고 시각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래도록 보지 못한 그녀와 또 다른 그녀를 보러 갔다.

 

그녀가 펴지지 않는 또 다른 그녀의 주먹 쥔 왼손을 억지로 조금씩 펼치자 오래된 살 냄새가 나의 코를 훅 찔렀다. 그녀는 가방에서 베이킹 용으로 만들어진 플라스틱 계량컵을 꺼내 익숙한 듯 물을 가득 담아와 또 다른 그녀의 왼손을 씻긴다. 금세 뿌옇게 변한 물을 다시 갈고 그 과정을 대 여섯 번 반복했다. 억지로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내야만 하는 터라 그 통증에 또 다른 그녀는 잦은 신음을 내면서도 연거푸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제 또 다른 그녀의 기억 속에는 그녀가 더 이상 딸이 아닌 것도 같다. 내가 더 이상 조카가 아닌 것처럼.

그녀는 코를 찌르는 살 냄새가 사라지자 손수건으로 물기를 깨끗이 닦아내고 두 손으로 주먹 쥔 왼손에 향이 좋은 핸드크림을 부드럽게 발라주며 “이 정도 향은 풍겨야지”라고 말한다.

 

또 다른 그녀는 순간 그녀의 딸을 알아본 듯 크게 웃는다.

 

이러한 계기로 생각의 변화가 생기면서 해왔던 회화들을 보여주는 개인전을 올해 6월 <사랑받고 있구나>라는 제목으로 진행했다. 이제 조금 더 내밀하고 구체적인 전달 방식으로 내가 그동안 사랑해왔던 여자들의 일상적인 삶과 그들의 공간 내가 기억하고 바라보는 그들을 회화로 시각화하는 <아는 여자> 시리즈를 해보고자 한다. 그들의 세상을 더 단단하게 구체화시키기 위해 단편 소설의 형태를 한 <아는 여자> 시리즈의 글도 함께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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